술시
하늘과 바다가 함께 취하는 시간
저녁의 스위치를 딸깍 켜면
황홀은 깨어나고
- 디카시집 『베리베리 칵테일』 중에서
술시는 몇 시를 말할까?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술시는 술(酒) 마시는 시간을 말하는 듯하다. 다른 술시(戌時)는 십이시(十二時)의 열한째 시로 오후7시부터 오후9시까지이다. 시인의 술시는 복합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놀이 가득한 바닷가에 서면 그리움으로 가득 젖는다. 저녁 스위치는 마음이 켜는 스위치이다. 저런 바다를 보면 불콰하게 마음이 먼저 취한다. 술이 없어도 마음이 먼저 취하니 하늘과 바다도 덩달아 취해버린 것이다. 술은 술술술 넘어가서 술이요. 마음도 술술술 풀어지니 술이다. 저런 바다를 쳐다보면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말없이 잔을 비우다보면 마음의 근심도 모두 비워지지 않겠는가?
- 임창연 (시인, 문학평론가)
■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을 일으키는 형상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서 문자와 함께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미지+문자(5행 이내)가 결합되어 한 편의 디카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디카시는 중·고등 국어 교과서 수록까지 이어져, 시의 한 장르로 충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 창연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