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돌아본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재등용은 국가의 대사였다. 인재를 통해 성장을 견인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기 위함이다.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어떤 기준이 필요할 텐데, 중국 당나라의 관리 전선(銓選)이 설정한 네 가지 기준, 신언서판이 과거에도 널리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의 과거제는 신언서판에서 서()에 방점을 둔 제도로서 우리나라에 있어 인재등용의 한 틀로 자리매김해왔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인물을 선택하는 네 가지 조건, 곧 신수, 말씨, 글씨, 그리고 판단력이다. 다시 말해, 풍채와 외모(또는 바른 몸가짐), 말을 통한 언변, 글과 글씨체, 그리고 통찰과 판단력을 말한다. 조선의 과거시험은 현장에서 지원자의 글을 통해 그의 학문의 깊이와 경륜을 평가하여 등용하는 제도이다. ()는 글씨를 보는 것인데, 이는 결국 한 사람의 글을 보여주는 전거(典據)가 된다.

 

그렇다면 글씨()가 왜 중요한가?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 기상, 깊이와 창의성을 알 수 있다. 글씨에는 무엇보다 그 사람의 적공(積功), 즉 내공(쌓아온 깊이)이 있기에, 한자 문화권에서는 명필가(名筆家)를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서예는 오랜 기간을 연마해야 하는 것으로서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벼루 네, 다섯 개가 닳아서 없어질 정도로 경전과 저술을 공부해야 한다. 이런 것이 필시 글씨가 보여주는 내공이 되었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많은 사람이 내 거는 입춘대길[立春大吉]建陽多慶[건양다경]. 봄의 길목에서 유명 서예가가 써준 이런 멋진 휘호를 하나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이야 문서 대부분을 컴퓨터 워드를 사용하여 처리하지만, 주고받는 편지나 문서를 간혹 수기로 처리하는 모습은 매우 정겹게 느껴진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서예에 관심이 가고, 개성 있는 문체에서 나오는 독특함과 창의성에 매료된다.

 

속도를 우선시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글씨가 흩뜨려지고 정체성을 잃은 것 같다. 어려서는 글씨체가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하물며 외국어를 익히면서부터는 한글과 한자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고, 우리말을 대하는 데도 소홀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이런 마음을 글씨로부터 다잡아 보려고 한다.

 

첨단 과학,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에 전 지구적인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인간의 신뢰와 믿음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바이러스로 인한 전 세계적 위기와 공포가 우리 사회를 잠식해온다. 어지러운 세상, 혼란한 마음을 다스리는데 글만 한 것이 더 있겠는가.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서예 또는 차분한 글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다스려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06 11:26 수정 2020.09.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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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