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택의 사랑방 이야기] 내 장례식에 놀러 오실래요?

정홍택


 


나의 장례식은 내가 세상을 작별하는 마지막 모임이니 그 계획도 내가 세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날 문 앞에 서서 손님들을 맞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식장 높은 단 위에 놓여있는 엄숙한 관 속에 단정히 누워있겠지. 나를 만나고 싶으면 안으로 들어와 내 관 앞에 서기만 하면 된다. 비록 관의 뚜껑은 닫혀 있겠지만 관 앞의 큰 사진 속에서 나는 환한 웃음으로 당신을 맞이하겠다.

 

, 그런데 부탁하건대, 관 뚜껑 열어달라고 요청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한다. 뷰잉(viewing)하러 왔으니 꼭 내 얼굴을 직접 보아야겠다고 아무리 강청을 해도 내 가족들은 절대로 관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미리 그렇게 말해 두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관 속에 누워있는 것은 내가 아니지 않은가?

 

뭐라고? 내가 아니라고? 시체를 바꿔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니,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거기 누워있는 것은, 말하자면 평소에 당신을 보면 웃음 띤 얼굴로 다가와 악수하고 안부를 묻던 그 평시의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설사 당신이 내 관 뚜껑을 열어젖히고 누워있는 나에게 -하고 손짓해도 나는 대꾸는커녕 눈조차 뜨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좋으니 땅에 묻기 전에 꼭 내 실제 얼굴을 보고 싶다고 강청을 하겠다면, 글쎄, 나는 지금 당신을 위해서 매우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시간과 뷰잉(viewing)하는 장례식 사이는 며칠간의 시간 간격이 있는 것이 통상이다. 즉 의사가 나의 사망 사실확인을 해 주면 장의사는 시체수송 리무진(Limo)을 보내서 나를 싣고 갈 것이다.

 

내가 실려 간 후 가족들은 여러 가지 장례절차 준비 때문에 잠시 나를 잊겠지. 장의사에 홀로 끌려온 나는 그들의 작업장에서 발가벗긴 채 누워 여러 가지 소독 절차를 거친 후 화장실로 옮겨질 것이다. 이 사람들의 <화장실>이란 보통 우리가 소변 대변보는 그런 곳이 아니라 그야말로 <얼굴화장>을 하는 곳이다. 덩치 크고 표정 없는 남자들이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면서 다가와 내 얼굴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들의 일은 (뷰잉을 위해) 내 얼굴을 되도록 사진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 근육을 부드럽게 해야 웃는 얼굴로 만들 수가 있다. 우리가 평소 북엇국을 먹으려면 우선 딱딱한 북어를 방망이로 두들겨 패야 제대로 뜯어지고 맛이 들듯이, 내 얼굴도 실컷 맞아야 (그들은 마사지라고 부르지만) 근육이 부들부들해져 그들 마음대로 온화한 표정으로 만들 수 있단다. 평생 맞지 않고 살아온 내가 지금 여기서 납치된 사람처럼 끌려와 모르는 사람들에게 따귀를 실컷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싫다.

 

그러고 나서 이들은 내 얼굴에 이상한 로션을 바르고 입술에 립스틱까지 칠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내 얼굴을 그릴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말을 할 수 없으니 속수무책이다. 그냥 그들이 만들어 준 얼굴로 가면처럼 웃고 있겠지. 얼굴화장이 끝나면 다음 차례는 몸이다. 몸 근육도 그런 식으로 풀려야 옷도 입힐 수 있고 손발도 순하게 가지런히 놓이게 된다.

 

이 모든 절차가 싫어서 나는 관뚜껑을 열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되도록 평화로운 얼굴과 고운 몸자세로 굳어지게 해 달라고.

 

내 장례식 절차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랑한 분위기에서 환하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8.15해방, 6.25전쟁, 각종 혁명등을 거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인도와 힘에 이끌려 미국 땅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살아 오늘에 이르렀다. 더 무엇을 바라랴. 그러니 마지막 길도 밝게 가고 싶다. 영혼을 상승시키는 찬송가와 내가 좋아하던 팝송, 유행가, 클래식 음률이 깊은 산속 시냇물같이 흐르는 실내에 초콜릿 냄새가 나는 촛불을 밝혀서 참석하신 분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으면 한다.

 

내 일생을 돌아보게 하는 DVD를 만들려면 간간이 내가 사랑하던 영화의 명장면도 같이 넣어주면 좋겠다.

 

시인 천상병은 <귀천>이라는 시 속에 이 세상의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나는 <졸업>에 비유하고 싶다. 그러면 <장례식><졸업식>으로 변하게 되겠지. 졸업식을 마치면 상급학교에 진학하듯이 나는 더 높고 밝은 세상으로 나아 갈 것이다. 이런 좋은 일이 생기는 행사에 검은 상복에 검정 넥타이를 매고 애써 웃음을 자제하는 모임이 되는 것을 나는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포도주와 간단한 안주도 준비할 것이니 식이 끝난 후에 다시 차를 타고 식당에 갈 필요가 있겠는가? 예수님도 마지막 만찬을 포도주와 빵을 준비해 사랑하는 제자와 나누셨으니 나도 사랑하는 당신에게 좋은 포도주와 안주로 대접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나의 <졸업식>은 아주 먼 후일에 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아내와 부부로 사는 이 세상의 시간을 되도록 오래 갖고 싶기 때문이다. “아니, 천국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무슨 소리야? 거기서 다시 만나 영원히 부부로 살면 되지 않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부부로 사는 것>은 이 금생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내는 저 부엌에서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우리 둘이 먹을 저녁준비를 하고 있다. 저녁이 다 되어가면 큰 소리로 나를 부를 것이다.

 

여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수저랑 놓고 상 좀 보아주세요.”

 

그러면 난 큰 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O.K.”

 

그리고 아내와의 저녁이 끝나면 이렇게 말하리라.

 

설거지는 내가 할게.”

 

 


[정홍택]

서울대학교 졸업

KOCHAM(Korea Chamber of Commerce in U.S.A.) 회장

MoreBank 초대 이사장

Philadelphia 한인문인협회 창설 및 회장

정홍택 hongtaek.chung@gmail.com


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12 11:32 수정 2020.09.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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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