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삶의 향기] 카르페디엠

김희봉

입력시간 : 2020-03-24 11:11:35 , 최종수정 : 2020-03-24 11:39:29, 편집부 기자

 



2020, 10년이 열리고 맞는 첫 봄이다. 아침을 들며 아내가 말했다. “새벽 묵상 중에 갈매기만 한 큰 새 한 마리가 난데없이 창 앞에 와서 화답하듯 춤을 추었어요. 마음에 놀라움과 감사가

 

40여 년을 함께 살며 까다로운 내 등살에 시달리고, 고생을 할 만큼 했는데도 아내의 영성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나이 들수록 못마땅한 게 많은 내 세상보다 아내가 사는 세상은 훨씬 밝고 넉넉하다.

 

10년이란 감회 때문인지 오늘 아침, 아내의 말이 유난히 가슴을 파고든다. 문득 카르페디엠 (Carpe Diem)”이란 시구가 생각났다. “현재를 살아라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말로 더욱 유명해졌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필요한 걸 넘치도록 갖고 있다. 그런데 더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미래와 과거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불행하다.”

 

나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축에 속한다. 대소사를 치를 때마다 아내는 잘될 거야, 괜찮아하며 독려하지만 나는 일단 일이 꼬일 가능성에 집착하고 불안해한다. 역설적이게도 걱정을 하면 덜 불안하다. 나중 돌아보면 아내 말이 맞았는데 내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는다.

 

6·25 때 판사셨던 아버지가 돌연히 납북당하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매일 일상이 불안했던 탓도 있으리라. 걱정이 많은 게 어머니와 내가 닮았다. 그러나 이 나이에도 소아병을 벗지 못한다면 평생의 교육과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최근에 짤막한 우화를 읽으며 내심 뜨끔했다. “어느 아버지가 동전 닷 냥을 주면서 방을 꽉 채우라고 했다. 첫째는 투덜거리며 건초 더미를 사다가 방을 채웠고, 둘째는 솜을 부풀려 밀어 넣었다. 셋째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저녁 한 끼를 대접하고 남은 돈으로 양초 한 자루를 사다가 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웃을 돕고 세상을 밝히는 셋째의 고귀한 삶을 칭송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첫째와 둘째의 삶을 답습한다. 왜 그럴까? 바로 눈앞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이익이 박한 현재가 못마땅하니 최선을 다하지 않고 건초더미 밀어 넣듯 눈가림만 한다. 아버지의 의중을 읽지 못한 탓이요, 내 욕심만 좇은 탓이다.

 

카르페디엠은 이웃의 행복도 함께 배려하는 사람들. 빛처럼 세상을 채워가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늘의 지혜다. 이들에게 현재는 짐이 아니고 복이다. 그러나 첫째와 둘째에겐 짐일 뿐이다. 빨리 고달픈 오늘의 짐을 팽개치고, 내일 올지도 모르는 요행만 계수하며 착각 속에 사는 것이다.

 

한 개그맨이 TV에서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말라는 강연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생각하면 가난도 짐이고, 부유도 짐입니다.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 책임도 짐이고, 권세도 짐입니다.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입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일 중에 짐이 아닌 게 없습니다. 이럴 바엔 기꺼이 짐을 집시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숨이 가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짐이라면 지는 게 현명합니다.”

 

오늘의 짐을 벗으려고만 하지 말고 기꺼이 지면 복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아프리카 어느 원주민들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다. 헛바퀴가 도는 차에는 일부러 짐을 싣는다. 짐은 마냥 나쁜 것만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복이 됨을 아는 것이다.

 

손쉽게 들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면 짐이 아니다, 짐은 무겁다. 그래서 짐은 등에 지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내 등의 짐이란 시에서 내 등의 짐이 없었으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보니 나를 바르게 살게 한 귀한 선물 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오늘의 짐이 복이란 말이다.

 

등짐을 진 개그맨이 다시 말했다. “우리 아예 짐을 져 봅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허리가 굽어집니다. 자꾸 시선이 아래로 향합니다. 짐을 지고서는 기고만장 날뛸 수가 없습니다.” 오늘을 감사하는 자만이 짐을 복으로 바꾼다. 카르페디엠.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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