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세계를 통일한 몽골제국

최용완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15 11:49 수정 2020.06.15 11:50


몽골은 한반도에서 태어나고 만주에서 자라고 몽골초원에 자리 잡아 사는 우리 핏줄의 기마민족이다. 몽골은 흉노과 돌궐의 후예로 동쪽은 만주초원, 남쪽은 고비사막, 서쪽은 알타이산맥, 그리고 북쪽은 호수와 시베리아의 숲으로 두른 지역이다. 1167년에 태무진(칭기즈칸)이 태어난 몽골 사회는 유목 사회의 인구증가에 따라 음식을 생산하는 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끊임없는 전쟁과 고난의 시기였다. 풍운아로 자라난 태무진은 군사들을 모아 경쟁에서 승리하여 정복하고 소유하는 즐거움을 길렀다. 1206년에 테무친이 몽골 지방의 칭기즈칸으로 추대되며 몽골제국이 시작하였다. 영토를 가족과 친척에게 5지역으로 나누어 지도체제를 세웠다.

 

30대 나이에 몽골국을 통일하고 42살 되는 해에 황하 상류에 옛 당나라의 지역을 정복하고 자원을 확보했다. 몽골군은 기마기술과 강철무기에 특이한 활을 가졌다. 동물뼈와 참나무를 부처 만든 활은 작고 힘이 세서 화살이 멀리 날고 정확했다. 항상 개떼를 몰고 다니며 적을 공격하고 말의 등에 가마솥을 이고 다니며 음식을 끓여 먹었다. 장군의 천막집, 게르를 이동하여 지휘본부를 차렸다. 훈족이 침략할 때처럼 세계적 민족 대이동을 일으킨 막강한 군사력이었다.

 

동이족 이씨 왕족이 다스린 세계 최강국 당나라가 300년을 집권한 후에 동아시아는 북에는 금나라, 남에는 송나라가 성장하고 있었다. 1215년에 몽골은 같은 만주 동이족의 후손이며 황하 유역에 옛 한나라의 부귀를 영유하는 금나라를 정복하였다. 나머지 만주지역과 티베트지역에 같은 혈연의 민족들을 통합하여 드디어 동아시아 세력이 세계를 정복하는 역사에 나선다. 칭기즈칸이 기마병을 달리던 유라시아 대륙횡단의 길은 선조들 훈족이 이미 로마를 멸망시킬 때 열어놓은 큰길이었기에 짧은 5년 동안에 서남아시아와 동유럽을 장악하는 세계적 거사를 쉽게 이룰 수 있었다.

 

곧 이어서 옛 페르시아 문화지역인 파키스탄지역과 카스피해 지역 동유럽에 침공해 들어갔다. 옛 로마의 영역인 흑해주위를 정벌하고 군사력은 더욱 증강하여 막강한 무기와 노동력을 구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태무진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지도체제를 아들 오고타이와 친족들에게 인계하면서 몽골 고향 카라코람에 돌아와 향년 60세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다.

 

부친의 거사를 이어받은 오고타이 칸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백인들의 근거지인 남부 유럽을 공략하고 6년 동안 동유럽 일대를 샅샅이 노략질했다. 유럽의 중세기문화에 주류역할을 해온 천주교는 위협을 느꼈고 로마의 교황청에서 몽골수도 카라코람에 사자를 보내어 교황청 보호를 청원하였다. 바그다드, 터키, 그리고 지중해 연안 일대를 공략하였다가 1260년에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집권하였다.

 

쿠빌라이가 양양을 함락하면서 남송은 더 이상의 저항할 힘이 없어져 1276년 몽골의 장군 바얀에 의해 수도 임안(臨安, 현재의 항저우)이 점령되면서 송나라는 멸망했다. 동남아시아 섬나라들과 인도의 남부와 스리랑카를 점령하고 서남아시아와 유럽에 영토를 더욱 확장하고 모든 피침략국으로부터 조공을 바치게 하여 국호를 원나라로 개칭하였다. 티베트, 월남, 동인도를 공략하고 한반도에는 고려의 수도 개성을 함락하였다. 동경(경주)을 점령하고 1274년과 1281년의 두 차례에 일본침공을 시도하였으나 해풍에 고난을 겪고 실패하였다.

 

이때 일본을 구한 가미가제’, 귀신풍(鬼神風)은 후에 출전하면 돌아오지 못하는 일방로 자폭 비행대로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2차대전을 일으킨 이름이다. 고려가 몽골에 정복당한 때부터 고려는 원나라의 대륙 문화권에 귀속하고 일본은 독자적으로 백제문화를 보존하여 당송문화권을 유지해왔다.

 

한반도는 대륙문화의 원명문화권으로 변화가 시작되고 일본은 한반도의 문화를 잘 보존해왔기에 오늘의 한국문화와 일본문화가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수도를 대도(북경)로 천도하여 지금의 자금성을 증축하고 당나라(AD618-907)의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대륙에까지 연결되는 세계대제국의 문화문명의 중심지를 북경(베이징)에서 이루었다. 지금도 북경 자금성의 북부는 몽골의 건축 유물을 볼 수 있다. 로마 제국 영토보다 7배 크기의 훨씬 더 큰 제국을 세웠다. 유럽국가들이 조공을 바치고 세계 각 대륙에서 상인들이 왕래하였다.

 

그들 중에 로마 교황의 서신을 가지고 찾아온 말코 폴로 부자는 쿠빌라이 칸의 신하로 일하고 모국을 왕래하면서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명을 서유럽에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은 아직 동전을 사용하는데 동아시아는 종이돈을 사용하는 등의 선진국 환경이 그들에게는 놀라웠다. 동아시아에는 옷감을 솜, 누에 실, 양털로 짜서 입고 종이와 목판인쇄가 발달하여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는데 이러한 문화와 문명이 그들에게는 새롭고 신비스러운 현상이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Divisament dou monde)에 그는 1274년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 네이멍구자치구 남부)에 도착했다. 17년간 원나라에 머물면서 그 수도 대도(大都 베이징)를 비롯하여 산시(陝西), 쓰촨(四川), 윈난(雲南),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장쑤(江蘇), 저장(浙江), 푸젠(福建) 지역들을 여행했다. 그는 양저우(揚州)에서 관리로 일하는 중에 공주의 호송단에 참가하여 수마트라, 말레이, 스리랑카, 인도 서남부 말라바르를 거쳐 1295년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몽골은 해양산업이 왕성하고 세계지형을 탐험하여 항로를 개발하여 아메리카대륙을 포함한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전 세계 대륙과 섬나라에서 조공을 받았다. 마르코폴로는 스리랑카에 방문하여 몽골의 세금을 받아왔다. 동방의 막대한 부유와 풍요의 이야기는 유럽인들의 호기심과 탐험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혔다. 중세기 암흑시대에서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지구의 반대편에 동아시아를 알게 되었다.

 

몽골 군사들은 화약총과 대포를 개발하여 유럽이 배워갔다. 한국에서 개발된 목판인쇄와 금속활자인쇄는 서유럽에 전해지고 출판기술은 유럽에 문예부흥을 가져왔다. 유럽내륙과 해안 일대는 몽골침략 이후 혁명적인 생활 변화를 초래하였고 이때부터 중세기에 암흑시대를 겪는 유럽을 잠에서 깨우고 서유럽에 해양활동이 시작된다. 세계역사는 동아시아 주도권의 역사에서 서유럽 주도권의 역사로 바꾸어 지기 시작하였다. 종교개혁,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고 인본주의 사상은 제국주의를 축출하여 민주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가 시작되었다.

 

구석기 시대 인류가 농사짓는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를 맞아 고인돌 마을이 시작하였다. 요하문명의 고조선 문화는 이집트 문명을 일으켰다. 동아시아 도교에서 시작한 불교 문화는 그리스 문명을 시작하고 기독교는 불교의 뒤를 따랐다. 훈족은 서로마를 정벌하고 동로마 제국을 세웠다. 몽골은 세계를 통일하고 중세 유럽을 일깨웠다. 동아시아 문화는 이탈리아 로마로, 게르만 독일로, 나폴레옹 프랑스로,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그리고 12차 세계대전을 승리한 미국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유럽의 자존심은 여기서 설명하는 역사의 진실을 모르고 우리는 그들의 가르침을 따랐다. 이제 미국과 동아시아의 경쟁이 시작된다. 태초부터 수만 년을 지나 몽골제국까지 동아시아는 인류 문명문화의 어머니였다.

 

<동아시어는 인류문화문명의 어머니> 최근에 새로 출판된 책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제 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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