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반항의 정신 (I) : 마담 로즈 하니(Warde’ Al-Hani)

이태상

 


1.

라쉬드 베이 누만은 내가 젊은 시절부터 잘 아는 사람이다.

 

베이루트에서도 부유하고 훌륭한 가문에 태어난 그는 마음이 너그럽고 착했으나 당시의 다른 대부분의 시리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물의 진상(眞相)을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표면적(表面的)인 것에만 눈을 돌렸다.

 

그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바깥소식을 듣기에 바빴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 마음의 눈은 어두워지고, 인생의 숨은 비밀 따위는 아예 관심 밖의 일이었다. 자연의 섭리와 법칙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한때의 쾌락과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만 급급했다.

 

말하자면 아무에게나 쉽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쉽사리 싫증을 느끼고는, 뒤늦게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는 부류의 남자였다. 이렇게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라쉬드는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기도 전에, 로즈 하니와 서둘러 결혼을 했다.

 

몇 해 만에 내가 베이루트에 돌아와서 라쉬드를 만났을 때, 그의 몸은 몹시 여위고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슬픔에 찬 두 눈이 그의 상한 심정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라쉬드? 어렸을 때부터 늘 명랑하기만 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리 달라졌나? 무슨 변을 당하기라도 했는가? 다정한 친구를 잃었거나, 아니면 재산상의 큰 손실이라도 있었나? 얘기 좀 해보게.”

 

그러나 라쉬드는 쓰디쓴 기억을 되살리는 듯 기운 없이 더듬거렸다.

 

친구를 잃으면 또 다른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재산을 잃으면 한동안 속상해하다가도 세월이 가면 잊어버릴 수 있지 않겠나? 자네라면 이 마음의 허전함을 어찌하겠는가? 만일 자네한테 자네가 정말로 굉장히 사랑하던 아름다운 새가 있었다 하세. 그런데 이 새가 자네 손에서 빠져나가 하늘 높이 올랐다가 내려와서는 엉뚱하게도 다른 새장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네 마음이 어떻겠나? 어디 가서 위로를 얻고, 그 누가 자네의 흩어진 마음을 다시 잡아 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괴로운 표정과 목멘 음성으로 말을 마치자, 라쉬드는 무엇인가를 움켜잡아 부스러뜨리듯이 그의 손가락들을 볼썽사납게 구부리고, 화가 치미는 듯 주름살이 많아진 그의 얼굴을 그 더욱 찡그렸다. 도깨비라도 본 것처럼, 그의 두 눈이 점점 커지더니, 갑자기 풀이 죽어 나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는 중얼거리듯 이렇게 말했다.

 

가난 속에서 건져주고, 이 세상의 모든 여인들이 부러워할 만큼 값진 보석과 비싼 옷으로 가꾸어 주고, 백마가 끄는 황금마차를 타게 해 주었던 여자 말일세. 내 온 정을 다 쏟아부었었지. 그런데도 나를 버리고 딴 남자한테 가서 가난뱅이 생활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른다네. 내가 먹이를 주고 아름답게 가꾸어 준 새가 내 손에서 벗어나서 다른 새장으로 들어가 버렸다네. 나의 낙원(樂園)에서 살던 아름답고 순결한 내 천사가 이제는 지옥으로 떨어져서 끔찍한 악마로 변해버렸다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잠시 말없이 있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맺었다.

 

이것이 내가 자네한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라네. 더 이상은 묻지 말게.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다네. 차라리 말없이 속으로 되씹는 불행이 되게 말일세. 어쩌면 이렇게 속으로만 화병을 앓다가 점점 기운이 빠져서,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겠지

 

나는 콧등이 시큰해지고 마음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내게는 그의 깊이 상한 마음을 위로해줄 말이 없었고, 그의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해 줄 횃불 아니 촛불도 없었다.

 

2.

며칠 뒤에 나는 마담 로즈 하니를 처음으로 만나 보게 되었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교외에 꽃나무 생울타리가 둘린 오막살이 집으로 찾아갔던 것이다. 마담 하니는 전에 라쉬드에게서 내 얘기를 들어 나를 알고 있다고 했다. 여인의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마주 보고 앉아, 여인의 천진스러운 음성을 귀담아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이 여자가 어떻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해맑은 얼굴을 한 여자가 어떻게 추한 영혼과 죄짓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정말로 이 여자가 라쉬드를 저버린 부정(不貞)한 아내인가? 라쉬드를 그토록 비참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인가? 일찍이 겉으로 아름다운 것일수록 속은 추하고 괴로움의 씨앗을 품고 있는 법이라고 익히 들어오긴 했지만시인들의 시흥(詩興)을 돋구는 달이 또한 바다의 고요를 깨뜨리고 무서운 파도를 일게도 하는 것처럼

 

내게 자리를 권하면서, 마담 하니는 마음속으로 하는 내 생각들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곧장 말머리를 꺼냈다.

 

전에 선생님을 뵈온 적은 없지만, 사람들한테서 선생님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딴 사람은 몰라도 선생님께서는 저 같은 여자를 깊이 이해해 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마음속 이야기를 들으시면 제가 정말 부정한 여자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겨우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그때 나이 사십이던 라쉬드 베이 누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하는 말대로라면, 그가 나를 사랑해서 아내로 삼았고, 좋은 집에 데려다가 종들과 하녀를 딸려 주고, 값진 보석들과 아름다운 옷들로 저를 가꾸어 주었어요.

 

그리고는 희귀한 물건이나 되는 것처럼, 나를 자기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자랑했어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를 바라볼 때, 그는 만족감에 미소 지었고, 부인네들이 나에 대해 소곤거릴 때, 그는 의기가 양양했었지요. 그러나 저 여자가 라쉬드 베이 누만의 부인일까, 아니면 양딸일까?’ ‘제 나이에 결혼했으면 저만한 딸이 있을 거야라는 등 수군거리는 소리를 그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미처 철도 들기 전, 그리고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이었어요. 행복은 비싼 옷과 좋고 큰 집에서 얻어지는 줄로만 알고 있을 때였지요. 그러다가 제가 철부지의 꿈에서 깨어났을 때, 제 영혼이 더없이 넓고 높은 사랑의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애를 쓰다가, 제 날개는 인간의 법률과 전통의 사슬에 묶인 채, 도리어 깊은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여자의 행복은 남자의 영광과 명예를 통해 오거나 그의 너그러운 마음씨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의 마음과 정을 합하여 하나의 삶으로 만들어 주는 사랑을 통해서 오는 것인 줄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이렇게 제 눈이 밝아지자, 라쉬드 베이 누만의 집에 갇혀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제 생활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는 거짓 된 것인 줄 알게 되었어요. 라쉬드의 사랑에 보답해서, 저도 그를 사랑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어요.

 

사랑이 마음을 좌우할 수는 있어도, 마음이 사랑을 만들 수는 없나 봐요. 고요한 밤이면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어요. 제 인생의 짝으로 선택된 남자에 대한 사랑이 제 마음속에 생기게 해 달라고요. 그러나 저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사랑은 인간의 호소에는 응하지 않고 우주 자연의 섭리만을 따르는가 봐요.

 

라쉬드의 집에 있는 이태 동안, 남들은 저의 신세를 부러워했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고통스런 나날이었어요. 저는 들새들의 자유를 부러워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바깥 들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 쓸쓸히 인생길을 걷고 있던 한 나그네의 눈길과 마주치게 되었어요. 그 순간 온 세상이 눈부시도록 밝아지고, 온몸이 짜릿해 오는 것을 느꼈어요.

 

무덤 속의 어두움이 나의 숙명인 걸, 감히 빛을 탐내지 말아야지.’ 그러자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하늘의 바람 소리가 들렸어요. 그래도 저는 귀를 막고 저 자신을 타일렀습니다. ‘지옥의 울부짖음이 내 숙명인데, 어찌 하늘의 노래를 탐내려 하나?’

 

저는 다시 눈을 감고 귀를 막았지만, 여전히 하늘의 빛이 보이고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몸이 오싹해졌어요. 거지가 길에 떨어져 있는 보물을 보고 줍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치지도 못하는 격이었죠. 사방에 사나운 들짐승들이 숨어 있는 시냇가에서 무서움에 떨며 서 있는 목마른 사슴처럼 말이에요.”

 

여인은 내게서 눈길을 돌리고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참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이는 한 여인이 겪는 수난(受難)의 의미를 이해할 길이 없을 거예요. 더구나 하늘의 뜻에 따라 한 남자를 마음속으로 사랑하면서도 이 땅의 법률과 관습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몸을 바쳐야 하는 여인의 피눈물로 쓰여지는 비극(悲劇)을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에요. 결혼의 참된 뜻을 알기도 전에 한 남자에게 매인 몸이 된 여인의 영혼으로 쓰여지는 이야기는 여자의 연약함과 남자의 난폭성에서 비롯한 역사이고,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날이 다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겠지요.

 

그러나 저는 온 힘을 다해 제 여림의 사슬을 풀고, 제 마음을 결혼이라는 새장에서 해방시켜, 사랑과 자유의 드높은 하늘로 날아오른 거에요. 저는 이제 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와 하나가 되어있어요. 지금은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그랬었던 것 같이 느껴져요. 아무도 우리 두 사람을 때어 놓지 못할 거에요. 이제는 아무도 제가 찾은 이 행복을 제게서 빼앗아가지는 못해요. 이것은 이해로 감싸고, 사랑으로 빛을 내며, 하늘의 보호를 받는 두 영혼의 결합에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지요.”

 

마담 로즈 하니는 자기의 말이 내 마음속에 어떻게 메아리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잠자코 있자, 로즈 하니는 쓰디쓴 기억을 되씹듯, 아니면 자유의 기쁨을 깊이 음미하듯, 조용한 음성으로 말을 계속했다.

 

사람들은 제가 호강에 겨워 저를 귀부인으로 만들어 준 남자를 저버렸다고 말할 거에요. 제가 성스러운 결혼을 파기하고 정부(情夫)를 쫓아간 창녀(娼女)라고까지 말하겠지요. 그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소리만을 메아리쳐 주는 깊은 산 속의 텅 빈 동굴처럼, 하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연의 법칙을 알지 못하며,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를 구별하지도 못하지요. 속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서 심판을 하고 판단하지요.

 

사랑의 뜻을 따르지 않고 관습과 전통을 따라 라쉬드 베이 누만과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밥을 얻어먹는 대가로 몸을 바치는 것이 하늘과 저 자신한테 죄짓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더 이상 먹고 입을 것 때문에 몸을 팔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이 나를 정숙한 부인으로 보아 주었을 때, 실제로 나는 간음하고 죄짓는 여자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남들 보기에는 더럽혀진 여자일는지 몰라도, 제 마음과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깨끗해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몸으로써 영혼을 판단하고, 물질로 써 정신까지 재려고 하지요.

 

라쉬드와 나의 두 영혼은 서로 딴 세계에서 살고 있었어요. 나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숙명으로 받아들여 체념(諦念)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제 영혼이 법률이라고 부르는 우상(偶像) 앞에 무릎을 꿇고 인생을 보낼 것을 거부한 것이에요. 사랑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떠나기로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사실 저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있었지요.

 

그러다가 갇혀 있던 새장에서 벗어나는 한 마리 새처럼, 모든 보석들과 의상들과 하인들을 뒤로하고 라쉬드 베이 누만의 집을 떠났어요. 저 자신에게 정직했던 것뿐이지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제가 더 이상 마음 괴로워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나 봐요.

 

저는 날이 저물면 날이 어서 밝기를 기다렸고, 날이 새면 어서 저물기만을 기다려야 했어요.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제가 평생토록 비참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나 봐요. 그러기에 행복을 갈망하는 마음을 제게 주셨겠지요. 하나님의 영광도 제 마음의 행복에 있을 테니까요. 이것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는 거짓 없는 저의 이야기이에요. 이것이 지금껏 제가 행복의 절정(絶頂)에 이르도록 닦아 온 험한 가시밭길이에요.

 

이제 죽음의 사자(使者)가 당장 저를 데리러 온다 해도, 저는 아무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하늘나라의 옥좌(玉座) 앞에 나서겠어요. 최후의 심판 날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지요. 마음은 눈과 같이 하얗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하늘나라 천사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서, 제 마음의 소리를 따랐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베이루트 사람들로부터 무서운 전염병 병균처럼 저주받은 저의 이야기입니다. 햇볕은 더러워진 땅에서까지 꽃을 피우듯이 언젠가는 사랑이 그들의 정신을 일깨워 줄 거에요. 훗날 길손들이 제 무덤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여기 하나님의 순결한 사랑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인간의 썩은 법률의 사슬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로즈 하니가 잠들어 있다라고 할 거예요.”

 

그리고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는 듯, 여인은 밝은 해가 비치는 바깥 하늘로 얼굴을 돌렸다. 이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매력 있게 빛나는 눈에 어설프지 않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마담 로즈 하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젊은 남자의 팔을 잡고, 그를 내게 소개한 다음, 내게는 과분한 말로 그에게 나를 소개했다. 나는 이 사나이가 마담 로즈 하니로 하여금 온 세상을 저버리고, 이 땅의 법률과 관습을 깨뜨리도록 한, 바로 그 사람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담 하니가 한 이야기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항하는 이유를, 아니 반항하게까지 된 까닭을 알아보기도 전에 구속부터 해놓는 법률이나 관습에 반항하는 자들을 박해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항변의 숨은 뜻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앞에 아름다운 두 남녀가 하나로 결합하여 하늘의 조화를 나타내고, 사랑의 신이 그의 날개를 펴서 이들을 세상 사람들의 험담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밝게 웃음 짓는 얼굴에서 진선미(眞善美)의 화신(化身/化神)을 볼 수 있었고, 내 생전 처음으로 법률로 금지되고 종교에서 저주받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깃든 참된 행복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하고, 사랑과 이해의 제단 위에 세워진 이들의 안락한 오두막 살이 집을 떠났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라쉬드 베이 누만을 생각했다. 그는 지금 슬픔 속에서 마담 하니를 원망하고 있지만, 하늘이 동정해 줄까?

 

자신의 마음의 자유를 좇아 남편을 떠난 여자가 잘못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여자의 마음을 정복하기 전에, 결혼이란 사슬로 여자의 몸을 묶어버린 남자가 잘못인가? 나는 생각해 보았다. 좋은 옷과 보석에 눈이 어두워져 남편을 버리고 허영과 사치를 좇다가 타락하는 여인은 많지만, 마담 하니처럼 부자 남편의 궁전 같은 집을 마다하고 가난한 남자의 오두막집으로 찾아든 것도 잘못 현혹된 것일까?

 

흔히 지각없는 여자가 남편에게 싫증을 느끼고 육체적인 욕망을 좇아 숨어서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젊은 남자를 찾아간 마담 하니 는 육체적인 욕망만을 좇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여자인가? 그렇다면 마담 하니는 라쉬드의 집에 살면서도 은밀하게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을 얼마든지 충족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쉽게 끌렸을 테니까.

 

불행했던 마담 하니는 행복을 찾다가, 찾는 순간 그 행복을 잡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회는 그 진실을 인정하기는커녕 경멸하고 정죄하며 비난하지 않는가? 나는 나 자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남편이 불행을 대가로 치르도록 하는 것이 용납될 일인가? 아니면 아내의 사랑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를 자신에게 억지로 예속시키려 드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나는 걷기를 계속했다. 마담 하니의 고운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해가 지면서 고요가 온 들에 내리깔렸다. 저녁 기도를 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나뭇잎들은 장난기 있는 산들바람에 자유롭게 춤추면서 햇빛을 즐긴다. 새들 또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시냇물 소리에 맞추어 노래하고 지저귄다. 꽃들 역시 자유롭게 향기로운 숨을 쉬며 미소 짓는다.’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자연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고, 거기에서 자유의 기쁨이 생기거늘, 유독 인간에게만 이런 축복(祝福)이 주어지지 않는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운 영혼을, 인간은 자기가 인위적으로 만든 법과 관습으로 구속하려 한다.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을 만들고, 스스로를 묻는 무덤을 판다.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인간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허깨비의 노예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인류 역사가 흐름에 따라 자유로워질 것인가? 언제까지 인간은 땅만을 내려다보고, 뒤를 돌아다보기만 고집할 것인가?’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코리아헤럴드 기자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편집부-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8 10:49 수정 2020.09.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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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