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가장 오래된 인사

민은숙

에드워드 O. 윌슨은 인간의 미소를 단순한 표정이 아닌 사회적 신호로 정의했다. 미소가 부모의 깊은 애착과 사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착안한 그는 이를 사회적 해발(解發)이라 불렀다. 새끼 동물이 어미의 보호를 이끌어내기 위해 내는 본능적인 울음처럼, 인간의 미소 역시 타인의 선의와 호의를 불러내는 선천적 신호라 할 수 있다. 미소는 말 이전의 언어이면서 인간관계를 세우는 원초적인 토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생물학적 순수성은 현대 사회의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종종 변질되기도 한다. 한국인의 거리 풍경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표정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낯선 이에게 웃음을 건네는 행위는 자칫 지나친 친밀함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반가운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의 얼굴은 순식간에 밝아진다. 이 미묘한 절제와 변화 속에는 한국적 정서의 양가성이 깃들어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처럼, 미소는 여전히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평화의 언어로 작동한다.

바로 그 신호가 현대 사회에서는 가장 교묘한 위장 수단이 되기도 한다. 미소는 신뢰를 자극하고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범죄 뉴스 속에서 사기꾼이나 유괴범이 평범한 이웃의 얼굴로 다가오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들의 미소는 친절의 기호를 두른 기만의 장치라 할 수 있다. 진심은 눈빛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거짓된 웃음은 가장 먼저 상대의 마음을 점령하려 한다.

오늘날 서비스 사회와 디지털 플랫폼 시대는 미소의 기능을 더욱 제도화하고 산업화했다. 면접관 앞의 지원자, 카메라 앞의 정치인, 브랜드를 입은 인플루언서, 심지어 인공지능 아바타까지 모두 친절한 웃음을 장착해야 한다. 우리는 그 미소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생산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웃음은 이제 감정이기에 앞서 성과이며 표현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피로와 공허는 정서 자본주의가 드리운 새로운 그림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소를 의심하거나 거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미소는 여전히 인간관계의 최소한의 신뢰 장치이며 타인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열쇠임은 분명하다. 그 힘의 진정한 원천은 진정성에 있다. 아기의 미소가 부모의 눈과 마음을 통해 의미를 깊어가는 것은 시간이 흐르며 사랑이 자라나는 과정의 증거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려는 마음에서 우러나 짓는 미소는 그 모든 위험을 넘어선다.

미소는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시험대이다. 사랑을 불러오기도 하고 위선을 감추기도 한다. 서로의 미소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란, 그 웃음이 거래의 수단이 아닌 존재의 표현으로 나올 때 비로소 가능하다. 위험을 안고서도 우리가 미소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인간이 타인에게 건네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효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작성 2026.04.01 10:29 수정 2026.04.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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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