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사랑할 수밖에 없는 터키 6부

오스만제국의 영광, 이스탄불의 왕궁들

여계봉 선임기자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인류의 문명이 살아 숨 쉬는 야외 박물관' 터키 이스탄불

인종과 종교가 수많은 충돌로 문명과 종교가 섞이고 교차한 곳

화려하고 낭만적 풍경보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야만의 역사도 같이 있는 곳

 

대륙, 문명, 인종, 종교의 경계지점이지만 그 경계가 허물어진 곳에서 과연 화해와 공존의 가치를 찾아볼 수 있을까.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문화와 문명의 소통로,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대교


기원전 666년 그리스 도시국가 메가라의 왕 비자스는 신탁에 의해 세 바다인 보스포러스해, 마르마라해, 에게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비잔티움((Byzantium)'을 건설한다. 330년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로마가 위협받자 콘스탄티누스 1세가 그리스의 식민 도시인 비잔티움을 제2의 수도로 삼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 불렀다. 1543년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16만의 오스만군에게 아시아 쪽 해안에서 콘스탄티노플을 바라보면서 내린 진격 명령이 '도시를 향해(To the city!)'였는데, 점령 후 도시 이름은 진격 명령의 중세 그리스 발음인 '이스탄불(Istanbul)'로 바뀌게 된다.

 

천혜의 요새이자 지정학적 위치로 늘 충돌의 중심에 자리한 이 도시는 비잔티움으로 996, 콘스탄티노플로 1,123, 이스탄불로 470여 년을 살아오고 있다.

 

도시의 심장부에 위치한 히포드롬은 원래 전차 경주 경기장이었다. 532년 이곳에서 유스티아누스 1세의 과중한 세금에 반발한 시민들이 '니카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군에 의해 모두 살해된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 오스만 술탄의 친위부대인 예니체리 부대가 해산 명령에 반발하여 이곳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전원 학살된 피의 광장이기도 하다.

 

광장에는 3개의 기둥이 남아 있는데 기원전 1500년 이집트 룩소르에서 가져온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30m였으나 운반 도중 아래가 깨어져 20m 높이로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뱀 3마리가 몸을 휘감으며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청동기둥이 있는데, 그리스 연합국가가 페르시아와의 전쟁 때 승리한 기념으로 그리스 델피 신전에 세운 것이다. 그러나 꼭대기의 황금 그릇은 십자군 점령 때 약탈당하고, 오스만 정복 후 3개의 뱀 머리는 오스만 정복 때 잘려나간다.

 

히드포름 광장의 청동기둥


청동기둥 뒤쪽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는 콘스탄티누스 7세 때 세워진 것인데, 원래 대리석에 금박 입힌 조각의 청동 장식물이었으나 4차 십자군 원정 당시 이 도시를 약탈한 십자군들이 청동을 벗겨 가지고 가는 바람에 벌거벗은 채로 서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등장하면서 그리스의 도시들이 발가벗겨졌는데, 십자군과 오스만 군대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하게 된 것이다.

 

히드포름 광장의 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

 

7대 술탄인 메흐메트 2세는 골든혼, 보스포러스해, 마르마라해가 만나는 언덕에 궁전터를 잡는다. 톱은 대포, 카프는 문을 의미하는데, 이 자리에 있던 대포를 뽑아내고 6년 공사 끝에 1478년 왕궁을 완성한다. 톱카프 궁전은 1856년 신시가지에 세워진 돌마바흐체 궁전 건립 때까지 378년간 오스만제국의 궁전으로 사용된다.

 

톱카프 궁전에는 3개의 문과 4개의 정원이 있다. 궁 입구인 '황제의 문'을 통과하면 제1 정원이 나오는데 궁전 수비부대인 예니체리 부대가 위치하였다고 하여 예니체리 마당이라고 불린다. 예니는 '새로운()', 체리는 '군인()'이라는 뜻으로, 예니체리는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한 지역 내 기독교 집안의 소년들을 뽑아 만든 술탄의 친위부대다. 이들은 궁성 학교에서 엄격한 훈련과 교육을 받았는데, 전투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려 오스만제국의 요직은 주로 이들 궁성 학교 출신자들이 차지하였다. 나중에는 이들의 권력이 너무 커져 술탄을 내쫓거나 암살도 하였고, 부정부패가 심해 오스만제국의 개혁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1826년 신식 군대 창설을 반대하여 히드포름 광장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마흐무트 2세에 의해 진압되어 부대가 결국 해체된다.

 

예니체리 마당 옆에 있는 이레네성당은 소피아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비잔티움 기독교의 본산이었다. 두 번째 '경의의 문'을 지나면 궁전 내부로 들어가는데 제2 정원이 나온다. 이곳은 죄인들을 참수하는 형장이었는데, 사형 집행수가 피묻은 칼과 손을 씻는 우물이 있다. 황제는 궁전 내부를 감시하는 망루 '정의의 탑'에서 형 집행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다고 한다.

경의의 문. 여기서부터 당시 평민들은 출입이 제한되었다.

2 정원의 끝에 금남의 집 하렘이 있다. 터키는 1대 황제 오스만 1세부터 9대 황제인 셀림 1세까지는 황후가 없었다. 황제는 외척 세력에게 권력이 분산되지 않도록 "후궁만을" 두어서 후사를 잇게 했는데, 이 제도가 바로 "하렘(harem)" 이다.

 

250개의 방이 있는 하렘에서는 왕의 어머니가 실권자인데, 하렘의 여인들은 배꼽을 드러내고 밸리댄스를 추면서 술탄에게 간택을 구한다. 술탄은 춤을 춘 여인이 마음에 들면 어머니에게 눈짓하여 동의를 구하고, 어머니가 여인의 어깨에 손수건을 올리면 간택이 끝난다. 술탄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아들의 출세를 위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여인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하렘은 1909년 하미드 2세가 퇴위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하렘의 연회실. 왕과 가족들을 위한 금남의 공간이다.

우리나라 TV에서도 인기리에 방영 중인 터키 대하 서사극 위대한 세기16세기 오스만제국을 배경으로 10대 술탄인 '술레이만 1'와 전쟁 포로 출신 노예에서 초대 황후 '휘렘 술탄'이 된 '알렉산드라'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인데, 주로 여기 톱카프 궁전에서 촬영되었다.


하렘의 카페스(kafes, 새장). 왕위 계승에서 탈락한 왕자들이 죽을 때까지 유폐되는 곳이다.

3 정원은 행복의 문을 통해 입장하는데, 술탄의 대관식을 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술탄 알현실이 있다. 접견실 밖에서 내부의 대화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수도꼭지에서 늘 물이 흐른다. 접견실 뒤로 다채로운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꾸며진 아흐멧 3세 도서관이 있다. 정원 오른쪽에는 보석 박물관과 성물보관소가 있다.


제3 정원 접견실. 내부의 대화 소리를 못 듣게 수도꼭지에서 항상 물을 흘려보낸다.

톱카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보석 박물관이다. 이스탄불은 이민족에 의해 정복된 적이 없어 궁전의 진귀한 보물들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왔다. 소장품 중에서 49개의 물방울 다이어몬드가 86캐럿의 다이어몬드를 감싸고 있는 톱카프의 단검이 가장 유명하다. 원래 오스만제국의 마흐무트 1세가 이란의 나디르 샤에게 선물한 단검인데 나디르 샤가 암살당하자 도로 회수해온 보물이다. 이 단검을 발견한 어부가 숟가락 장수에게 숟가락 3개를 받고 팔았다고 해서 '숟가락 장수의 다이어몬드'라고도 불린다. 8만 개의 금화를 녹여 만든 250kg의 황금 의자, 술탄의 왕좌, 갑옷과 투구 등 진귀한 보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슬람 성물 박물관에는 셀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가져온 예언자 무하마드의 외투와 칼, 턱수염과 치아, 모세 지팡이, 다윗 칼, 세례 요한의 손뼈 등이 보관되어 있다. 박물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보석 박물관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톱카프의 단검(나무위키 제공)


술탄과 가족들 개인 공간인 제4 정원은 궁전의 꼭대기에 있어 이스탄불의 전망을 한 눈에 내려볼 수 있다. 정원 한가운데 있는 바그다드 정자는 1638년 무랏 4세의 바그다드 점령을 기념하여 세운 건축물인데, 우아한 아치와 이즈닠 타일 장식이 인상적이다. 정자 옆에는 술탄들이 라마단 단식 후 첫 번째로 식사를 하던 아프타리예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마르마라해와 보스포러스 해협의 풍광이 백미다.

 

제4 정원과 아프타리예 정자

바그다드 정자. 바드다드를 정복한 기념으로 세운 건물이다.

'가득 찬 정원'이라는 뜻의 돌마바흐체 궁전은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럽 쪽 바다를 메우고 세운 궁전이다. 원래 목조 건물이었으니 1814년 대화재로 불에 타자, 술탄 압둘 마지드 1세는 퇴락해가는 제국의 부흥을 꿈꾸며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을 모방한 유럽식 궁전을 1856년에 재건한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라본 돌마바흐체 궁전

궁전의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시계탑을 지나면 잘 가꿔진 프랑스식 정원이 나타나고 사자의 석상을 지나면 길이 600m, 43개의 연회장과 홀, 285, 발코니 6개가 L자 모양으로 배치되어있는 궁전이 나온다. 궁전 입구에서 나누어준 비닐 덧신을 신발에 씌우고 안으로 들어가면 크고 호화로운 내부 장식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천장마다 걸려있는 샹글리에, 벽에 걸린 명화, 진열된 수많은 보석, 도자기, 그릇 등은 모두 세계 정상급 보물들이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입구. 내부 사진 촬영은 지나치리만큼 통제한다.


이 궁전은 터키가 공화제로 바뀐 뒤,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19381110일 오전 95분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집무 도중 사망하는데, 터키인들은 그 시간에 시계를 멈춰 세워 그들의 영웅을 추모하고 있다.

 

마지막 관람 코스인 그랜드 홀에 들어서면 탁 트인 36m 높이의 천정에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선물 받은 이 샹들리에는 무게가 4.5t이나 나가는 세계 최대의 샹들리에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돌마바흐체 그랜드 홀의 세계 최대 샹들리에(나무위키 제공)


돌마바흐체 궁전의 화려함 뒤에는 씁쓸한 역사가 있다.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지중해에만 집착한 오스만은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제국의 부흥을 위해 궁전을 건축하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었고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아름다운 궁전의 주인공 황제 압둘 마지르1세는 재임 내내 불행했고 결국 궁 안의 터키탕에서 독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한다.


황제가 유람선을 타러 궁에서 보스포러스해로 나가는 문


세계의 중심이었던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몰락하기 전까지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이슬람 세계의 맹주로 군림했던 오스만제국은 과거의 영광을 꿈꾸는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범투르크주의를 내세우며 군사와 외교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고, 서방 국가들은 터키의 이러한 팽창 행보를 경계하고 있다.

 

인간이 탐할 수 있는 화려함을 다 쏟아부은 돌마바흐체 궁전의 베란다에 서니 보스포러스 해협의 파도가 눈앞에서 넘실거린다. 바다는 오스만제국의 흥망성쇠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물결치며 유럽과 아시아 틈새를 유유히 흐르고 있고, 한 무리의 돌고래 떼가 그 사이로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6.08 10:40 수정 2021.06.0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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