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여름특집 1

올여름에는 수도권 전철과 버스 타고 청정계곡 속으로

이제 7월이 되면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게 되고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일상이 시작된다.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거대한 찜통인 도시를 벗어나서 시원한 산과 바다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면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멀리 지방으로 간다면 교통체증은 물론 많은 시간과 경제적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가만히 있어도 땀을 줄줄 흐르게 만드는 여름의 폭염을 피하기 가장 좋은 곳은 단연 계곡이다. 수도권에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거나 발품을 조금만 팔아도 인적이 드문 짙은 초록빛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자연미 넘치는 이곳에서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걷거나 차가운 계곡물에 발 담그면 더위는 물론 코로나 스트레스까지 단박에 씻어낼 수 있다.

 

이번 여름특집은 수도권에서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여 접근성이 뛰어나며, 인적이 드문 계곡에서 호젓하게 힐링을 즐길 수 있는 명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여름 숲의 청정계곡에서는 원시림 속을 걷는 에코(ECO)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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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도 쉬어가는 가평 오지 용소폭포와 무주채폭포

 

경기도 내 최고봉인 화악산(1,468m)과 제2봉인 명지산(1,267m) 사이로 뻗은 가평천 상류는 수도권에서 몇 안 남은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빼어난 경치와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지류 골짜기들이 굽이치고, 이 골짜기들엔 어김없이 우렁찬 물소리를 내뿜는 웅장한 폭포들이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가평천 최상류의 오지에 속하는 도마천 일대는 환경청이 고시한 경기도 내 유일의 청정지역이기도 하다. 도마치 계곡의 용소폭포에서 무주채폭포에 이르는 숲속은 원시가 그대로 살아있는 신비스러움과 차디찬 계곡물이 흐르는 청정계곡을 오롯이 품고 있어 호젓하게 힐링을 즐기기에는 최고의 명소다.

 

가평 용소폭포와 무주채폭포를 가려면 가평역에서 15-5번 버스를 타거나 가평 목동 터미널에서 50-5, 50-6번 버스를 타고 75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용수동 종점에서 하차하면 한다. 여기서부터 도보로 38교를 지나 3km 정도 올라가면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옆에는 이곳이 6.25 전쟁 때 국군 6사단과 중공군의 격전지였음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평화의 쉼터가 있다.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후세에게 전쟁의 상흔을 알리기 위해 당시의 사진 자료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쉼터에서 건너편 계곡으로 넘어가는 철다리를 지나면서 계곡 트레킹이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가면 가평8경 중 5경인 2단 폭포 적목용소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멀리서 봐도 짙푸른 물이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데, 폭포들이 거센 물살로 오랜 세월 공들여 파내 이룬 소들 가운데 이토록 선명한 초록 물빛을 자랑하는 곳도 드물 것이다.

 

여기서 1km 정도 떨어진 무주채폭포를 만나기 위해서 국망봉(1,168m) 오르는 산길을 따라 계곡 안쪽으로 들어간다. 폭포로 가는 숲길은 그늘진 숲이 물길과 어우러지며 끊임없이 풍경이 변한다. 따로 이름 붙이지 않았으나 폭포라 불러도 무방한 물길들이 자주 나타난다. 폭포까지 거리가 멀지 않고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무주채폭포 가는 길. 숲속은 더위를 잊게 하는 냉기로 가득하다.


하늘을 덮은 원시림 숲속은 햇빛이 사라져 어둑하기만 하다. 간간이 만나는 청보라빛 산수국은 은은한 꽃향기를 숲속에 내뿜는다. 꽃이 있어 아름다운 길, 꽃향기가 있어 더 아름다운 길이다. 폭포 가는 길은 시간에 쫓기거나 서두를 필요 없다. 느긋하게 원시의 자연을 만끽하면서 걸어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름 없는 작은 폭포가 이끼 덮인 바위 사이를 힘차게 흘러내리고 있어 숲속에는 냉기가 가득하다. 얼음 같은 계곡물이 뿜어내는 냉기에 더위는 싹 가신다.

 

무주채폭포 가는 길에서 만나는 이끼 낀 돌계단은 기자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건조해서인지 이끼가 가득 자라있지는 않지만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가득 덮인 돌계단과 바로 옆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연출하는 자연의 앙상블 때문에 계곡의 신비로움은 한층 깊어진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비밀스럽고 신비스럽지만 비가 온 후에 가면 훨씬 더 아름다운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초록색 이끼를 입고 있는 돌계단은 천국으로 오르는 길이다.


무주채(舞酒菜)폭포라는 이름이 좀 특별하다 싶었는데 안내판의 유래를 보니 깊은 산속에서 무관들이 무술을 익히고 나서 이곳에서 나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 즐겼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폭포, 위로 계속 가면 국망봉 가는 길이다.

 

숲길 끝에 이끼 낀 녹색 계곡과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절벽을 만난다. 절벽 위 넓적한 바위에서 가파른 암벽을 타고 폭포수가 미끄러지듯 흘러내린다. 그러다가 모난 바위를 만나면 비가 바람에 흩날리듯 산발해서 휘날린다. 높이 30m의 거대한 바위 위에서 가는 물줄기들이 여러 겹 모여 한 굽이 휘어지며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마치 명주실 실타래를 연상케 한다. 비 온 뒤 수량이 늘면 물살은 부챗살처럼 퍼지며 더욱 장관을 연출한다.

 

무주채폭포는 초록색 이끼 담은 암벽 사이로 부챗살 같은 물줄기를 흘러내린다.


계곡 입구의 용소폭포에 입수하지 못한 한을 여기서 푼다. 몸을 벽을 기대어 폭포수를 맞는다. 시원함을 넘어 오싹함이 온몸을 감싼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리다 못해 아려서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오고 만다.

 

여름 가기 전, 가평 오지 깊은 산속의 폭포에서 나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춤을 추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고, 시원한 골짜기에서 잠시 새가 되어 풀에 맺힌 이슬로 혀를 적시고 조물조물 노래하며 날아서 춤추지 않겠는가.

 

 

가평 경반계곡에서 귀나 씻고 놀다 가소!

 

가평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그중에서도 경반계곡은 당일 피서지로 최고다. 거울 경(), 큰 돌 반(), ‘거울처럼 맑은 반석이니 신선이 노닐 듯이 수려한 풍광을 지니고 있다. 경반계곡은 칼봉산과 매봉 사이에 있는 회목고개 아래 수락폭포에서 시작되어 가평천에 합류되는 5km의 오지 계곡이다. 이웃한 용추계곡에 비하여 경관은 손색이 없지만 덜 알려져 상대적으로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어, 울창한 삼림과 차갑고 맑은 물을 지닌 청정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골짜기다.

 

칼봉산(900m)은 한북정맥의 명지산 남쪽 능선에 솟은 매봉의 동쪽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주 능선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칼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반계곡을 가려면 가평역에서 71-4번 버스를 타고 경반리 윗말에서 하차한 후 칼봉산 자연휴양림 입구까지 2.5km 정도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경반계곡을 오르는 산행은 칼봉산 휴양림의 백학동에서 출발하여 경반분교 터와 경반사를 거쳐 수락폭포까지 오른 뒤 다시 경반사 아래로 내려와 잣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임도를 따라 짚라인 체험장을 지나서 칼봉산 자연휴양림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걷는다.

 

칼봉산 자연휴양림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환경친화적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가평읍에서 휴양림까지는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지만 여기서부터 경반분교와 경반사까지 길은 사륜구동 차량만 들어갈 수 있는 험한 임도다. 비가 온 뒤에는 수시로 물길을 건너야 하고 길이 끊기기도 한다.


산행 들머리 한석봉마을. 가평군수였던 한석봉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을 따라 그냥 편하게 숲길을 걷는다. 그러나 길만 보고 걷다가는 길섶의 달맞이꽃도, 오디나무도, 산길 아래 어둑한 숲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도, 화전민들이 살았던 사람살이 흔적들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길가의 뜰보리수나무 열매는 맛이 상큼하고 입안이 시원하여 지금이 먹기에 딱 좋다. 한 움큼 따서 호주머니에 넣고 수락폭포에 오를 때까지 간식으로 요긴하게 먹는다. 숲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갈수록 계곡물이 자주 산길을 넘쳐흐른다. 수량이 적으면 징검다리로 건너지만 비가 온 뒤에는 등산화를 벗어야 한다.


숲에 잠긴 경반분교는 1980년도까지 화전민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산에 사는 사람들이 점차 떠나면서 학교도 자연스럽게 폐교가 되었는데 지금은 야영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반분교는 MBC ‘12방송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경반분교는 캠핑문화가 다시 유행하면서 오지 캠핑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경반분교 오토캠핑장. 오지의 짙은 녹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경반분교를 지나면 마지막 민가가 나온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데 고목에 길게 매달린 그네가 정감을 더한다. 선인들은 산을 경전(經典)으로 삼고 살았다. 삶은 통째 산을 닮으려는 노력이었다. 이런 산골에서 귀를 열고 자연의 소리나 들으며 욕심 없이 사는 것이 바로 선()이 아닐까.

 

경반계곡은 곳곳에 소()를 만들어 낸 매우 여성적인 계곡이라 할 수 있다. 계곡 주변으로 나무들이 울창하여 마치 계곡이 나무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잠시 후 임도와 회목고개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회목고개 방향으로 30여 분 오르면 아담한 폭포 옆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암자 경반사에 이른다. 모든 것이 소박하다. 입구에 있는 작은 종, 허름한 민가 건물에 불상을 모신 작은 암자라서 더욱 정겹다. 절 입구에 있는 작은 종을 울리면 잠든 영혼을 깨우고 지친 마음에 쉼표를 그려주는 동네 여염집 같은 절이다. 주변에 서 있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로 그윽한 경반사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법당이다.

 

경반사를 나와 회목고개로 오르는 임도에서 계곡으로 가는 산길을 따라 물길로 내려서면 우거진 숲 사이로 옥빛 소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위골짜기가 나온다. 폭포는 높이 33m 되는 바위 절벽을 물살이 비스듬히 퍼지며 타고 흘러내리는 형국인데, 폭포가 내는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자욱한 물안개가 계곡에 가득하다. 천고의 바위틈에서 자란 기송노수(奇松老樹)가 폭포의 절경을 더한다. 폭포 위에 있는 선녀탕에는 은은한 옥빛 물이 고여 있는데, 선녀 한 사람이 몸을 담글 만한 아담한 소().

 

수락폭포 앞에서 탁족을 즐긴 뒤 발길을 돌려 내려간다. 빽빽히 들어선 잣나무 숲 사이로 난 임도로 들어서자 산길은 적막하고 고즈넉하다. 느릿느릿 걷는 것처럼 마음에 충만을 주는 행위도 드물다. 경사진 듯 평탄한 듯 쭉 곧은 듯 구부러진 듯 완만한 임도를 넉넉한 마음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산이 나요, 내가 바로 산이다. 울울창창(鬱鬱蒼蒼) 잣나무 숲이 불멸의 생, 바로 영생이 아닐까.

 

숲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물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뿐이다. 속세에서 소음으로만 들리던 매미 소리가 이곳에서는 마음을 일깨워 머릿속을 비워주는 자연의 가르침으로 들린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산길 중간에 갑자기 하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짚라인을 타는 사람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숲을 가로지르며 내는 괴성이다.

 

하늘에서 스릴을 체험하며 경반계곡의 원시림을 즐길 수 있다.


산행 날머리인 칼봉산 자연휴양림 계곡에서 양손 맞대어 가득 물을 연거푸 얼굴에 끼얹으니 땀방울이 낙수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조용함을 깨고 옥수를 더럽혔는데 얼굴에서 떨어진 물들은 흐르는 물에 합류하여 아래로 흐를 뿐이다. 잠시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당실당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물 흐르는 소리인지 솔바람 소리인지 구분이 안 가는 계곡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산과 하늘의 밝음과 물과 소리의 맑음을 마음에 담으니 잠시나마 선인이 된다.

 

세상은 지금 어지러운 난장이다.

귀나 씻고 놀다 가소!’

경반계곡이 던지는 말이다.

 

 

가평 연가(戀歌) 흐르는 용추구곡(龍湫九谷)

 

가평 용추계곡으로 가려면 가평역에서 71-4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칼봉산에서 발원하여 옥녀봉을 감싸듯이 흐르는 가평 용추계곡은 총 24에 걸쳐 흐르는데, 옥색의 맑은 물과 계곡마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기암괴석, 능선에 우거진 참나무, 잣나무 군락지 등 훼손되지 않은 청정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걷거나 계곡 속을 걷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데 계곡이 넓고 반석과 얕은 소가 많아 물놀이를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용추구곡 가는 호젓한 오솔길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가평군의 옛 이름은 가릉군이다. 유학자인 성재 유중교(省齋 柳重敎) 선생은 가릉군 옥계산수기(嘉陵郡玉溪山水記)’에서 이 계곡의 비경을 감탄하며 용이 하늘로 오르며 아홉 굽이에 걸쳐 그림 같은 경치를 수 놓았다는 의미로 옥계9(玉溪仇谷) 또는 용추구곡(龍墜九谷)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용추계곡 트레킹은 연인산도립공원 안내소를 출발하면서 시작된다. 1곡 와룡추를 시작으로 9곡 농원계까지 용추계곡의 아홉 굽이를 돌면서 약 6km 코스의 탐방로를 따라 2시간 정도 걷게 된다. 칼봉산과 연인산이 내린 초록 그늘 숲을 걷고, 맑은 물과 기암괴석, 짙푸른 녹음이 어우러진 풍광도 즐기고, 원시의 계곡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

 

트레킹이 시작되는 연인산도립공원 안내소 상류 쪽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1와룡추(卧龍湫)’는 폭포가 마치 누워있는 용의 모습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풍파에 힘겨워 너럭바위 위에 패어 내린 물길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이 흘러내리며 그 아래로 아름다운 담()을 이루고 있다. 기암 사이로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린다. 이 폭포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폭포 옆 경사진 바위 위에 깊게 파인 자국은 용이 누웠던 자리라고 한다.

 

간이 주차장 바로 위 계곡에 있는 2무송암(撫松巖)’은 천년 묵은 노송이 바위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정면에서 보면 사람 모습이지만 남쪽과 북쪽에서 보면 남근석과 흡사해서 자식을 원하는 여자들이 많이 찾았던 바위라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물과 바람을 견디어온 바위는 아름다운 형상의 크고 작은 소를 만들고,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은 부딪치고 깨지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다양한 소리를 내는데, 이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화음이다. 그래서 3탁영뢰(濯纓瀨)’는 구슬같이 부서지는 계곡 양안에 있는 바위라서, 4고슬탄(鼓瑟灘)’은 흐르는 물소리가 거문고와 비파 연주 소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비탈 큰 바위에는 토종꿀 채집통이 매달려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비경에 취해 가깝지 않은 이 길을 피곤한 줄 모르게 걷는다. 맑다 못해 시리게 푸른 계곡물은 남은 빛깔마저 남김없이 받아들인다. 5일사대(一絲臺)는 좁은 협곡 안에 하얀 실타래를 늘여놓은 듯하고 물빛이 속까지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곡의 마지막 공영주차장 공원 옆의 깊은 협곡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계곡이 너무 깊어 내려가기 힘들므로 전망대에서 관람하는 것이 안전하다.

 

달 밝은 가을밤 바위 아래 동그란 연못인 6추월담(秋月潭)’과 푸른 숲이 우거진 협곡인 7청풍협(靑楓峽)’을 지난다. 산자락에는 원시림과 함께 잣나무, 참나무 군락이, 길가는 얼레지, 은방울, 투구꽃 등 야생화들이 쉬엄쉬엄 걷는 이들의 시선을 뺏어간다. 이 길을 걷다 보면 번뇌로 가득한 삶의 무게가 어느새 가벼워졌음을 깨닫는다.

 

8귀유연(龜遊淵)’은 옛날 옥황상제를 모시던 거북이가 용추계곡의 경치에 반해 내려와 놀다가 결국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그대로 바위로 굳어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곳이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 옆에서 하얀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와 깊은 소를 바라보며 짜릿함을 즐긴다.

 

8곡 ‘귀유연(龜遊淵)’은 용추구곡 중 가장 좁고 깊은 협곡이다.


칼봉산 쉼터를 지나면 용추계곡의 상류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숲길이 시작된다. 한 점 새소리마저 흡입한 탓인가. 깊은 숲길은 아득하다.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이라 한여름에도 햇살이 잘 들지 않아 시원한 녹음 트레킹을 즐긴다. 차분한 산길은 몇 차례 징검다리를 건너 마지막 9곡으로 이어진다.

 

빛 한줄기 숨어들지 못하게 빼곡한 숲길 안은 흐르는 물소리와 서늘한 바람, 잣나무가 뿜어내는 향으로 가득하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자락 곳곳에 낮은 석축과 계단 모양의 지형이 눈에 띈다. 이곳이 과거 화전민들의 애환이 서린 삶의 터전이었음을 알려준다. 참나무 숯을 만들어 내다 팔던 숯 가마터도 보인다. 그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땀과 노동으로 일구었던 치열한 삶의 흔적은 아직도 깊은 오지 곳곳에 남아 있다.

 

9곡 ‘농원계(弄援溪)’로 들어가는 길은 신비로운 태고의 원시림 숲길이다.

제법 너른 숲길이 끝나는 깊은 계곡에는 물살이 흐르면서 노니는 시내, 9농원계(弄援溪)’가 있다. 연인산에서 흘러내린 옥수가 모여 골짜기를 이룬 이곳은 기묘한 바위와 티끌 하나 없는 맑은 물, 울창한 숲이 서로 손잡고 태고의 자연을 빚어낸다. 물속에 들어가니 물속에 내가 투영된다. 농원계의 맑은 물은 그동안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준다.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계곡이 많은 가평이 너무 좋다. 용추계곡 녹수(綠水)도 산객을 따라 같이 내려온다. 그래서 용추 골짜기에는 가평 연가(戀歌)가 흐른다.

 

 

짙은 초록색 빗장을 열고 용문산 상원계곡에 들어서다

 

양평 용문산은 서울 근교 산행지이자 유명한 관광지다. 산이 워낙 커서 수량이 풍부한 탓으로 여름에는 사나사 계곡, 중원 계곡, 용문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늘 북적인다. 그러나 상원사 아래에 있는 상원 계곡은 덜 알려져 아직은 여유로운 피서를 즐길 수 있어 기자가 감춰두고 자주 찾는 곳이다. 계곡 근처에 있는 상원사까지 산책을 할 수 있고, 발품을 더 팔면 상원사와 용문사를 잇는 한적한 오솔길도 둘러볼 수 있어 숨겨진 알짜배기 계곡이라고 할 수 있다.

 

상원계곡 가는 길은 상원사 가는 길에 있다. 양평 용문역에 내려 용문 우체국 앞에서 7-1번을 타고 연수리에 내린 후 보릿고개 체험 마을을 지나서 계속 상원사 쪽으로 올라가면 상원계곡 주차장이 나온다. 상원사 도로 차단봉 옆길로 들어서면 도로 오른쪽이 바로 상원계곡이다. 계곡은 상원사 올라가는 길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데 수량이 풍부하고 깊지 않으며 원시림으로 드리워져 있어 물놀이를 즐기며 무더위를 피하기에 최적인 곳이이다.

 

주차장에서 상원사까지는 약 1.5km 거리인데 왕복 1시간 정도면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다. 상원사 가는 길은 포장된 도로이기는 하지만 숲과 바람과 햇살에 온전히 숲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산사로 가는 숲길로 들어서면 한여름 짙고 짙은 초록색 빗장으로 걸어 잠그고 속내를 보이지 않던 비밀스러운 숲이 나타난다. 인적 없는 숲길을 걷다 보면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상원계곡으로 오르는 길 주변은 비밀의 정원이다.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잠시 거칠어진 호흡은 고즈넉한 절에 부는 바람이 안겨주는 풍경 소리에 이내 평안을 되찾는다. 대웅전 뒤로 용문산 정상 가섭봉이 보이고 왼쪽으로 장군봉과 백운봉의 거친 산세가 이어진다. 상원사는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 절을 중심으로 의병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바람에 일본군에 의해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는 아픈 생채기도 안고 있다.


상원사 암자 뒤로 통신 시설이 있는 용문산 정상 가섭봉이 보인다.


절에서 계곡으로 내려온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숲속은 시원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인지 계곡물은 순수하고 맑다. 푸르고 고요한 계곡 숲은 비록 어마어마한 위용의 거목들은 아니지만 건강한 소나무들과 느티나무, 전나무가 치솟아있고, 버드나무, 벚나무, 박쥐나무 등 온갖 널찍한 이파리를 가진 나무들이 여름의 치열함을 가리고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1시간여 짧은 트레킹이지만 만만찮은 한낮의 치열함을 식히기 위해 맑디맑은 계곡 물속으로 뛰어든다. 달아오른 몸과 마음이 순간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다.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청정해지고 잡념이 사라진다.

 

트레킹 후 상원계곡에 몸을 담그면 열락(悅樂)의 경지에 든다.


기암괴송과 옥빛 물색의 향연, 북한산 진관사 계곡

 

북한산은 명실상부 수도권의 허파다. 바위산임에도 아름답고 물 맑은 골짜기가 산재해 있다. 그중 진관사 계곡은 북한산 계곡의 백미다. 응봉능선과 향로봉 북서릉 사이에 깊게 파인 이 골짜기는 골 양옆으로 기암절벽이 솟구쳐 있고, 매끈한 암반을 타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흘러내려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여느 유명 골짜기 못지않다.

 

3호선 연신내역에서 701, 7211번 버스를 타고 하나고등학교 앞에서 하차한다. 진관사계곡 트레킹은 하나고 맞은편 은평전통한옥마을 입구에서 시작한다. 고목과 한옥이 어우러진 호젓한 도로를 따라 300m쯤 들어서면 진관사 공원지킴터에 이어 일주문이 나오고 키 큰 소나무들이 도열해서 반기는 길 끝에 극락교가 있다.

 

진관사 계곡 들머리 은평전통한옥마을

 

진관사 극락교 옆 계곡에는 나무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물안개 피어나는 호젓한 산책길에서 물 내음, 풀 내음을 한껏 맡는다. 경내로 들어서면 칠성각, 대웅전, 나한전 등 전각들과 함께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진관사의 장독대도 눈에 들어온다.

 

진관사는 신라 진덕왕 때 원효가 삼천사와 함께 신혈사(神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나 고려 현종 때 진관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진관사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지난 2009526, 칠성각을 해체하여 보수 작업하던 도중 '독립신문', '신대한' 등 독립운동 사료 420여 점이 태극기 보자기에 싸인 채 벽 안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90년 동안이나 숨죽여 있던 귀중한 사료들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진관사. 고려 현종과 진관스님의 비사가 담겨 있는 천년사찰이다.


산행은 절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산길은 골짜기 왼쪽으로 나 있다. 계곡 곳곳에 널린 너럭바위 위로는 와폭(臥瀑)이 흘러내리고, 그 위로 올라서면 옹달샘처럼 작은 소들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가파른 폭포 위로 올라서면 비경이 또 한 차례 펼쳐지고, 물가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펼쳐져 앉아 쉬기에도 그만이다. 너른 암반과 깨끗한 물, 짙게 우거진 신록의 숲, 곧게 뻗어 청량감을 주는 낙엽송이 어우러져 기품 있는 계곡미를 즐길 수 있다.

 

물줄기를 오른쪽에 두고 숲길을 따라 계속 가면 향로봉과 비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계곡 길을 잇는 동안 오른쪽과 왼쪽으로 난 계곡은 여전히 부드러운 물살과 너른 바위를 뽐낸다.

     

진관사 계곡은 물 맑고 짙은 숲이 매력인 암반 계곡이다.

계곡과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온다. 올랐다가 내려오니 발길이 가볍다. 아래로 흐르는 물길을 따르니 육신조차 편안하다.

 

한여름 고단한 속세의 삶에 지친 이들은 맑은 물에 마음을 헹구는 심정으로 수도권 계곡을 찾아볼 일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여계봉 기자
작성 2021.06.25 11:06 수정 2021.06.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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