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전명희 [기자에게 문의하기] /
시인의 의자·20
-강변에 버려진 의자
시인의 의자는 시인이 떠난 뒤 삼십 년 동안 강변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먼지 위에 개망초가 돋아나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졌다가 시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인이 살던 곳에는 시인의 의자와 똑같은
화려한 의자에 수많은 가짜 시인들이
시인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엉터리 시를 쓰고 뻐기고 있었습니다.
문학상 놀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화전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낭송으로 뻐꾸기를 날리며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때마다 마을 촌장님, 무당, 목사, 스님, 꽃 배달원 등이 함께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하늘에 별을 딴 것처럼 시인들은 날마다 술판을 벌였습니다.
시(詩)는 없고 시(屍)가 넘쳐났습니다.
시인이 다시 강변을 찾았을 때
버려진 시인의 의자를 보았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겨울 강변, 시인의 의자를 에워싼 하얀 갈대꽃이
한들한들 시인의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새마을 방송 확성기에서 유행가 메들리
“갈대의 순정”과 “고향무정”이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