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23
-들쥐들의 보금자리
강변에 버려진
시인의 의자는
들쥐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들쥐들은 들판에 나가서 가을이면 농부들이 지어놓은 벼이삭 모가지를 싹뚝 끊어와 시인의 의자 밑에 잔뜩 쌓아 놓아가면서 겨우살이를 준비하곤 했습니다. 벼이삭을 까먹고 쌓인 왕겨가 마치 방앗간 뒤뜰 같았습니다.
들쥐들은 새끼 낳고 새끼들이 자라서 또 새끼를 낳고 들쥐들의 개체 수는 해마다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시인의 의자가 있는 주변 강둑은 모두 들쥐들이 사는 마을이 만들어졌습니다. 시인의 의자에서는 들쥐들의 시 낭송 소리가 밤마다 들려왔습니다.
수시로 들쥐들은
운동회를 열곤 했습니다.
찍찍찍 우당탕탕
시인의 의자 부근에는 쥐똥이 수북이 쌓여갔습니다. 먹거리가 많은 들쥐마을에 바퀴벌레들이 찾아와 보금자리를 틀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철 장맛비가 오자 들쥐 오줌과 똥이 강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들쥐마을 부근 강물에 미꾸라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미꾸라지들이 많아지자 미꾸라지를 잡아먹고 사는 가물치, 메기, 베스, 부르킬 등 물고기들이 찾아왔습니다. 강의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낚시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낚시방송에서는 강변 시인의 의자 부근의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소식을 전국에 내보냈습니다. 전국 강태공들의 시선이 시인의 의자가 있는 강변의 낚시터에 모아졌습니다.
들쥐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족제비들이 달려왔습니다. 집 나간 길양이들이 들쥐를 잡아먹으러 시인의 의자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두루미들이 달려왔습니다. 자취를 감췄던 솔개들이 하늘을 빙빙 돌며 들쥐들을 노렸습니다.
겨울철에만 찾아온 독수리들이 강변 들쥐마을에서 머물다 가곤했습니다. 들쥐마을에서는 날마다 들쥐들의 실종자가 늘어났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처럼 불어났습니다.
농민들은 농작물의 피해를 주는 들쥐들을 처치해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환경단체에서는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는 강변 시인의 의자 들쥐마을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떠들어댔습니다.
들쥐들은 우리들도 살아갈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행정당국은 시민을 위한 휴식처로 하상정비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청소차가 와서 수거해갔습니다.
중장비를 동원하여 강변시민공원으로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날마다 부릉부릉 기계 소리 들려왔습니다. 들쥐마을에는 들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쥐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