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25
-쓰레기장
시인의 의자가 있는 쓰레기장에는 쥐들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썩지도 않는 비닐, 플라스틱, 페트병, 제초제병, 폐그물, 스티로폼, 건축폐기물 등이 가득 쌓여갔습니다. 점점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높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늙은 할아버지 한 분이 날마다 손수레를 끌고 와 쓰레기장을 뒤적거렸습니다. 쓰레기장 주변에 혼자 살고 있는 폐휴지를 수거하며 겨우 먹고 사는 할아버지였습니다. 날마다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길거리 상가에서 버린 포장 상자를 주워다 고물상에 팔았습니다. 힘겹게 손수레 가득 포장 상자를 고물상에 가져가도 겨우 삼사천의 지폐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른 새벽 일어나 길거리를 쏘다니다가 버려진 포장 상자가 없을 때면 쓰레기장을 찾았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에서 해마다 달라지는 부자나라 모습의 꾸겨진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우뚝우뚝 아파트가 세워지고 새 도로가 세워지고 강변이 말끔하게 정비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일회용품으로 커피 한잔을 마실 때도 플라스틱에 담아 플라스틱 빨대로 쪽쪽 빨아대며 쓰레기를 엄청나게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고물상에서 받아주는 재활용이 되는 쓰레기들을 모아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안녕”
시인의 의자는 할아버지가 찾아올 때마다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시인의 의자와 마주쳤으나 그냥 지나치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가 시인의 의자 곁으로 와서 시인의 의자를 이리저리 들추었습니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뼈대는 남아 있어도 다시 쓸 수 있겠구나. 이걸 가져다 움막에 갖다 놓아야겠다”
시인의 의자는 쓰레기장 부근 다 쓰러져가는 움막 같은 할아버지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슬레이트 지붕 비가 새는지 쓰레기장에서 주어온 비닐로 덮어놓은 집이었습니다. 너덜너덜 비닐 조각이 만장기처럼 펄럭펄럭 하늘나라 여행길을 보채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수십 년 앓아누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된 할아버지 방안 벽에는 할머니와 나란히 찍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고물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래가 애잔하게 흘러나왔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정말 시다운 시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동적인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시를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처음 만났던 가난한 시인을 생각하며 날마다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