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이정민 [기자에게 문의하기] /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있다
외딴 길이 끝나는 산 밑에
토담집 하나 늙은 고라니처럼 앉아 있다.
황토벽 시렁 위에 도시의 외투를 벗어 걸어두고
아궁이 속 깊이 독백 같은 불을 지핀다.
한 무더기의 불이 구들을 타고 지나가고
못된 고양이 같은 연기에 취해 막걸리를 마시며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는 북극성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지글지글 익는 꽁치 한 점을 떼어 먹다가
검게 타다 만 꽁치의 눈과 마주쳤다.
미안하구나 저마다 삶은 그 곳에 닿아 있어
타오르는 아궁이 속 불처럼 적멸하고 마는구나.
나는 네 미안한 눈동자에 취하고
너는 내 농담 같은 관념에 취해
우리는 떨어진 막걸리를 사러 십리 길을 걸어간다.
달빛아래 사과나무가 손을 흔드는 밤
간판도 없는 낡은 가겟집 문을 열고
연탄난로 옆에 앉아 막걸리 한 병을 딴다.
귀 어둔 할아버지가 엉거주춤 나와
안주하라고 양은쟁반에 소금 종기를 내온다.
물 좋은 막걸리에 소금 안주를 먹으며
할아버지의 세월을 읽다가
소금의 본적지를 생각하다가
막걸리의 사생활을 엿보다가
노래를 부르며 다시 흔들흔들 되돌아오는 길
별빛도 평등하게 내리는구나.
어깨동무한 그림자도 즐거워 웃고
손에 든 봉지 속 막걸리도 키득키득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