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기록연대는 불분명하지만 ‘정감록’에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사람 살기 가장 좋은 땅으로 언급한 곳이 ‘풍기 금계, 봉화 화산, 보은 속리산, 남원 운봉, 예천 금당동, 공주 유구, 영월 정동, 무주 무풍, 부안 초암, 합천 가야산’이라고 적고 있다.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는 오래전부터 숨어 살기 좋은 땅이라 하여 고려 말 고려 왕족들이 찾아 들었다는 말도 있고 6·25 때는 평안도, 황해도 사람들이 찾아 들어왔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풍기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북쪽 사투리가 간혹 들린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풍수에 관심이 많아 십승지 중에서도 가장 먼저 거론되는 풍기를 일부러 찾아 가 보곤 했다. 우리나라의 동, 서 분당을 예언했고 풍수도참사상을 남겼던 남사고는 말을 타고 소백산을 지나다가 말에서 내려 소백산에게 큰절을 하면서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십승지 중에 풍기, 예천, 봉화가 다 소백산자락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풍기 하면 인삼을 떠올리게 되는데 조선시대 풍기군수로 부임했던 주세붕이 소백산자락에서 산삼의 씨를 받아 재배하게 한 것이 풍기인삼의 유래다.
그 인삼이 더욱 이름나게 된 계기는 인삼재배에 경험이 있는 고려 개성사람들이 풍기에 숨어 살게 되면서 인삼재배기술을 개발하게 되어 풍기인삼이 전국 최고의 품질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이다. 다른 견해는 풍기의 땅이 사양토로 배수가 잘되어서 인삼이나 사과 농사에 적합한 땅이라고 한다.
또 풍기인삼은 다른 지역의 인삼보다 조직이 충실하고 사포닌 함량이 매우 높다는 평가도 있다. 20년 전쯤 작가 최인호의 상도라는 소설을 읽었다.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은 중국으로 다니면서 인삼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인데 고려인삼의 매력에 빠진 중국 사람들이 고려인삼을 싸게 매입할 요량으로 상인들끼리 담합해서 인삼값을 깎기 위해 불매운동을 했다, 그러자 임상옥은 자기가 가져간 인삼을 모아 놓고 불을 질러 태워버린다.
상상도 못 한 임상옥의 행동에 놀란 중국 상인들은 다시는 인삼 값으로 장난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사람의 삶으로 본다면 한 번 죽고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명리학자가 상인으로서 성공해 부를 쌓은 임상옥에게 ‘살다가 내 소유물 중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손해가 나면 그때는 운이 다한 줄 알아라.’라는 조언을 한다.
임상옥이 어느 날 방안에 앉아 있는데 마당에 놀고 있는 병아리를 하늘을 날고 있던 송골매가 꿰차고 가는 것을 보고 그날로 모든 일에서 물러나고 가진 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한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세밀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소설 상도였다.
소설을 읽고 강하게 남았던 주인공 임상옥이다. 풍수학적으로 가장 사람이 숨어 살기 좋은 곳으로 으뜸인 풍기에서 인삼으로 부를 축척한 임상옥이 떠올랐다.
건강보조식품의 최고봉에 있는 인삼, 풍수학적으로 최고의 길지라고 알려진 풍기, 그리고 역사 속 실존 인물이라고 한 임상옥, 이 소재들이 스토리텔링이 된다면 풍기라는 땅이 더욱 더 빛이 나지 않을까?
소백산의 두 물줄기가 감아 도는 길지 풍기 땅에서 임상옥이 했던 말을 기억하며 인삼밭 주변을 걸어보았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말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소백산을 품은 풍기의 아름다운 자연은 인생이모작을 시작해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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