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31
-썩지 않는 비닐
쓰레기장 옆에 버려진 시인의 의자는 날마다 손을 흔들며 촐랑대는 비닐봉지들의 몸짓,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여야 했습니다.
“다 썩어도 우리는 절대로 썩지 않는다. 모두 더럽게 썩어갔지만 우리는 썩지 않고 영생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 비닐들이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도 우리는 끝까지 썩지 않는다. 썩은 세상에 썩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치는 우리들의 멋진 시, 그 구성진 낭송 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썩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래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축복받은 비닐이다.”
날마다 요란스럽게 찢어진 옷을 펄럭거리며 당당하게 춤을 추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비닐들이 시인의 의자에 서로 앉아 시를 읊겠다고 극성을 떨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와 끈질기게 엉터리 시를 낭송하며 자기네들끼리 웃고 떠들어댔습니다. 그것은 마치 악마들의 축제 같았습니다.
‘너희들은 절대로 시인이 될 수 없는 석유 찌꺼기를 인간들이 과학기술로 개발해서 비닐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비닐봉지, 농사용 잡초 방지 비닐, 비닐하우스 등으로 쓰다가 쓸모가 없어져 버린 쓰레기들이다. 버려진 존재들이 썩지 않았다고 너희가 옳다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악랄한 악마들의 짓만 같았다.
너희들의 존재를 좋게 보는 이는 이 세상이 아무도 없다. 두고두고 골칫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모든 생명은 주어진 생명만큼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니라. 죽으면 썩어서 다른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되어야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하는 거란다. 너희들같이 썩지 않으면 온 지구가 썩지 않는 너희들로 가득 차서 다른 생명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된단다.
자연의 질서가 엉망이 되어버린단다. 너희들을 다시 수거하여 사람들이 재생하면 좋겠지만, 사람들이 게을러져서 너희들을 그냥 버린 것일 거고, 너무 더러워져서 재생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버린 것일 거다. 썩지 않고 펄럭거리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웅덩이 지킴이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너희들을 다시 살리려고 애를 썼겠지만 이제 너희들은 재생의 희망도 없어져 버렸다.
만약 사람들이 너희들을 수거해 불태우려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수거하는 비용이 너무 들어서 고심할 것이고 만약 수거하여 불태워 버린다고 하더라도 공기가 오염되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 안 해도 지구촌의 굴뚝산업이 많은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단다. 너희들은 정말 골치덩어리다. 불에 태우면 다른 생명들이 숨을 쉴 수 없을 터이니 어찌하면 좋을꼬’
하나님의 고심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인간들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석유 찌꺼기에서 비닐을 뽑아내는 방법을 터득하여 비닐을 만들고 그것을 편리하게 쓰다가 버려서 그 뒤처리를 못 하는 바보 같은 짓을 어떻게 처리할지 날마다 걱정했습니다. 그나마 2020년부터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 19가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 전 인류를 공포의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편리함을 위해 건드리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과학기술을 내세워 산더미 같은 욕망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채우려다가 숨겨놓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짓을 어찌할지 고심이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 팔아 바이러스 퍼지는 것을 막으려는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가짜 심부름꾼 때문에 하나님도 골치가 아픈가 봅니다. 자꾸 하느님의 차가운 말씀인 눈이 다른 해보다 더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인의 의자에 앉아 「밤눈」이란 시를 한편 써보았습니다.
밤눈
밤새 하얀 눈이 내렸다
하느님의 하얀 말씀
온 세상이 내 품 안에 있느니라
너희들이 살고 있는 곳을 모두 덮어놓았다
어떠냐? 눈 뜨고 보아라
높은 산등성이, 낮은 골짜기
더러운 곳과 깨끗한 곳
구별하지 않는 내 사랑을……
네 가슴 속에 울렁울렁
누군가 보고 싶지 않느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귀 막혀 못 듣는 너희들에게 수화했느니라
자, 이제 차가운 내 말을 눈으로 보아라
밤새도록 하얗게 거품 품어대며
조근조근 내려보낸 내 잔소리
이른 새벽 일어나 내게 다가와
귀담아 들으면
네 발자국 꼭 새겨 놓겠다
싫다고 날뛰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겠다
비탈길 엉덩방아 쓰려뜨려 놓겠다
항상 기억해둬라
네 어린 시절을
네 소중한 이웃들을
항상 차갑게 새겨두고 설레는 가슴으로
오늘도 처음처럼 감사히 맞이해라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살아서는 썩어서 자기밖에 모르면서 역겨운 냄새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다 죽어서도 썩지 않고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다. 썩으면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의 자양분이 되겠지만 썩지도 못한 기름 찌꺼기로 만든 비닐, 플라스틱은 악마의 분신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