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여계봉 [기자에게 문의하기] /
떠나가는 숨은벽
밤골 국사당 지나
사기막 능선을 올라서면
해골바위 위로
숨은벽이 나온다
너 만난 지
어언 15년
가을만 되면
더 이상
속 깊숙이 감춰둘 수 없어서
더 이상
혼자서만 간직할 수 없어서
파란 하늘 병풍에다
고운 빛깔 붉은 수를 놓는 너
빨갛게 타는 듯
이는 꽃불은
그리움의 밀어되어
활활 번져가는데
이 가을날에
너처럼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고
사시사철
가슴이 시퍼른 이는
얼마나 불행할까
숨은벽 대슬랩에
나뒹구는 잎사귀가
안스러운지
따사한 햇살이
낙엽 위로
살포시 내려앉고
밤골계곡 굴참나무숲에서는
길쭉한 갈잎의 서걱거림이
중저음의 첼로소리로 내려앉는다
그렇게
반쯤 지워진 입술로
부르다만 노래를 마저부르려는 듯
숨은벽은
조곤조곤 가을을 떠나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