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이정민 [기자에게 문의하기] /
사월四月 그리고 사월蜡月
사십구재 후 엄마의 가재도구를 정리했다
문갑 서랍 속에 새끼손톱만 한 보청기가 귀를 잃고 누워 있었다
꺼내 귀에 대보니 먹부전나비 떼가 날개를 파닥이며
열여섯에 시집 온 당신을 펼친다
불지도 않은 바람이 한껏 주파수를 올린 듯 귓속이 멍멍했다
어디에도 닿을 수 없었던 수묵 빛 소리들이
외이와 고막, 달팽이관을 떠돌며 수런거렸다
오래 앓아온 이석증이 도진 것일까
장롱 속 탈색된 옷가지들이 펄럭이고
말라 갈라진 당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이제 여한 없데이...
여한 없음은 한 평생 고단했다는 또 다른 말일까
삼배 치맛자락 감아쥔 당신은
살구꽃 오보록이 날리는 고샅길을 지나
잔물결 뒤채는 박 속 같은 구름밭을 지나
해도 달도 뜨지 않는 어둑신한 숲을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아이처럼 울먹이며 부르는데도
엄마는 못 들은 채
낙지한 나뭇가지들이 수북한 숲길로 걸어들어 갔다
대신 두 귀를 감싼 저녁이
길고 쓸쓸한 목을 빼문 채 뒤돌아보았다
이내 한없이 둥글어진 물소리 같은 것이
지문이 다 뭉개진 바람 같은 것이
내 귓속으로 흘러들며 잠잠해졌다
당신이 떠난 사월四月은
저물 대로 저문 섣달 사월蜡月이었다
[박수현]
계간시지 '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샌드 페인팅'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받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받음
제 4회 동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