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사월四月 그리고 사월蜡月

박수현

사월四月 그리고 사월蜡月



사십구재 후 엄마의 가재도구를 정리했다

문갑 서랍 속에 새끼손톱만 한 보청기가 귀를 잃고 누워 있었다

꺼내 귀에 대보니 먹부전나비 떼가 날개를 파닥이며

열여섯에 시집 온 당신을 펼친다

불지도 않은 바람이 한껏 주파수를 올린 듯 귓속이 멍멍했다

어디에도 닿을 수 없었던 수묵 빛 소리들이

외이와 고막, 달팽이관을 떠돌며 수런거렸다

오래 앓아온 이석증이 도진 것일까

장롱 속 탈색된 옷가지들이 펄럭이고

말라 갈라진 당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이제 여한 없데이...

여한 없음은 한 평생 고단했다는 또 다른 말일까


삼배 치맛자락 감아쥔 당신은

살구꽃 오보록이 날리는 고샅길을 지나

잔물결 뒤채는 박 속 같은 구름밭을 지나

해도 달도 뜨지 않는 어둑신한 숲을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아이처럼 울먹이며 부르는데도

엄마는 못 들은 채

낙지한 나뭇가지들이 수북한 숲길로 걸어들어 갔다

대신 두 귀를 감싼 저녁이

길고 쓸쓸한 목을 빼문 채 뒤돌아보았다

이내 한없이 둥글어진 물소리 같은 것이

지문이 다 뭉개진 바람 같은 것이

내 귓속으로 흘러들며 잠잠해졌다

당신이 떠난 사월四月은

저물 대로 저문 섣달 사월蜡月이었다



[박수현]

계간시지 '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샌드 페인팅'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받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받음

제 4회 동천문학상 수상


작성 2022.04.12 09:10 수정 2022.04.12 09:35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정민기자 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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