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최현민 [기자에게 문의하기] /



겨울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난삽할까. 깔끔하게 정리된 경복궁의 모습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서산에 걸린 해도 묵은 때를 씻으며 불타고 있다. 한여름의 열기와 가을 단풍의 현란함도 다시 내년 봄을 기약하며 향정원 연못 차가운 얼음장 아래로 숨었다.
겨울은 생로병사와 성주괴공의 끝이 아니다. 칩거하며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자연의 순환이며 이치다. 경복궁이 이를 말해준다. 차디찬 땅속에는 나무뿌리가 펌프질하고 수선화와 모란도 내년 봄을 준비하며 겨울잠을 잔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조선의 왕들도 경복궁 어느 곳에선가 동면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사는 반목하고 투쟁하지만, 권력의 핵심부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경복궁은 지금 아무런 욕심도 없이 허허롭다. 철 지난 경회루에 올라 찌든 마음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싶은 겨울이다. 동지를 기점으로 해는 점점 길어지고 우리의 희망도 얼음장을 비집고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