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한탄강 주상절리의 비경 속으로

여계봉 선임기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천혜의 한탄강 주상절리 절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길이 두 곳이다. 하나는 한탄강 위에 부교로 만들어진 물 윗길에서, 또 하나는 절벽을 따라서 허공 사이를 따라 걷는 듯한 잔도에서다. 이곳에 서면 주상절리의 멋진 풍광과 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한탄강(漢灘江)은 ‘은하수 한(漢)’자에 ‘여울 탄(灘)’자를 쓴다. ‘은하수처럼 밝고 큰 여울’이란 뜻이다. 오늘은 겨울철에만 걷을 수 있는 ‘은하수처럼 밝고 큰 여울’의 물 윗길 8km와 2021년 11월 개통된 3.6km의 주상절리길 잔도를 걷기 위해 아침 일찍 철원으로 달려간다. 

 

은빛 세상에 빠진 한탄강 순담계곡

 

길이 136㎞의 한탄강은 철원과 포천, 연천을 지나 전곡에서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한탄강의 발원지는 휴전선 너머 북한 평강군 장암산이다. 27만 년 전 평강고원의 화산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강을 따라 흐르다가 철원 땅을 덮었는데, 거대한 용암대지 위를 흐르던 강물은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거치며 무너져 내려 좁고 긴 협곡을 만들게 된다. 한탄강 지질공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무암 절벽, 주상절리, 폭포 등 다채롭고 아름다운 지형과 경관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탄강 물 윗길 코스(태봉대교-순담계곡, 8km)/철원군청 제공

 

한탄강 물 윗길 얼음트레킹은 한탄강 얼음 위를 걸으며 철원의 겨울 추위와 한탄강의 깊은 협곡, 현무암 주상절리, 화강암 기암괴석 등 차별화된 자연자원을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트레킹이다. 태봉대교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얼어붙은 강물 위를 걷거나 부교를 통해 이동하면서 순담계곡까지 이어진다. 따뜻한 날씨로 얼음이 덜 얼 것에 대비, 전 구간에 부교를 이용한 물 윗길이 설치되어 있고 코스 중간중간에 안전요원들이 배치되어 있어 탐방객들은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오늘은 빙결 상태가 좋지 않아 강 위로 설치된 부교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어 아쉬움이 크다.

 

부교로 연결된 물 윗길을 걸으며 가까이에서 주상절리의 비경을 즐길 수 있다.

 

트레킹 시작점인 태봉대교에서 1km 하류에서 만나게 되는 송대소에서는 신비한 주상절리대와 30m 높이의 거대한 현무암 적벽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돌기둥을 한데 모아 부챗살처럼 펼쳐놓은 방사선 주상절리대는 한탄강의 비경으로 손꼽힌다. 제주도 대포동 주상절리와 많이 닮은 이곳은 무명실 한 타래가 들어갈 정도로 수심이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은하수 다리. 강화유리를 통해 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한탄강의 절경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얼음 트레킹은 추운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한탄강이 펼쳐내는 풍광은 무척이나 이채롭다. 수직으로 뻗은 주상절리대와 깎아지른 거대한 협곡은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린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은 마치 제주도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한탄강 물 윗길에 나타난 눈토끼

 

송대소를 지나면 마당처럼 넓게 펼쳐진 마당바위가 나타난다. 한탄강 일대에서 가장 크고 넓은 화강암 바위다. 마당바위에서 승일교까지 구간은 크고 작은 바위와 돌과 모래가 뒤섞인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고석정 근처에는 수많은 작은 돌들이 넓은 강가에 가득하다. 이윽고 철원팔경(鐵原八景) 중 1경인 고석정에 도착한다.

 

순백의 설원과 주상절리 빙벽

 

고석정(孤石亭)은 의적 임꺽정의 설화가 깃든 곳이다. 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20m 높이 거대한 고석(孤石)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 바위는 마치 거대한 수석에 분재를 올린 듯 그 모습이 독특하다. 바위 꼭대기에는 임꺽정이 은둔했다는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은 장정 서너 명이 너끈히 들어갈 수 있다. 바위 아래에는 작지만 기다란 모래톱이 이어진다. 

 

철원팔경 제1경 고석정과 고석

 

고석정은 교통이 편하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아 여기서 트레킹을 종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탄강 트레킹의 최고 비경은 고석정에서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1.5㎞ 구간이다. 순담계곡(蓴潭溪谷)은 조선 정조 때 김관주(金觀柱)가 이곳에 연못을 파고 순약초(蓴藥草)를 재배하여 복용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까지는 부교 구간으로 부교와 너덜지대가 반복된다. 부교에 올라 걷다 보면 협곡 좌우로 기암괴석들이 도열하여 반겨준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 가는 길은 다채로운 기암들로 가득하다.

 

부교는 대교천이 흘러드는 합수부까지 이어진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 돌고래나 새같이 보이는 하얀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현무암과 화강암이 뒤섞인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을 지나면 다시 부교가 놓여있다. 순담계곡까지 이어지는 길은 송대소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송대소에서 보았던 주상절리가 이어지는 수직 현무암 석벽과는 달리 순담계곡에서는 퍼즐처럼 이어지는 동물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순담계곡 일대에는 국내 최초로 높이 10m가 넘는 깎아지른 협곡에는 3.6km 구간의 잔교가 벽에 선반을 매달아 놓은 듯 달려 있다. 순담계곡에서 얼음 트레킹이 끝나면 기암괴석과 절벽 등 천혜의 경관을 하늘에서 조망할 수 있는 한탄강 주상절리길 트레킹으로 이어진다. 

 

순담계곡에서 바라본 주상절리길의 잔도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일명 '한탄강 하늘길'로 불리는데,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 3.6km, 폭은 1.5m의 잔도다. 한탄강 협곡 절벽에 잔도를 만들어서 개방한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지상 20~30m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아 놓은 길이다. 트레킹 시작지점은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순담 매표소와 드르니 마을 매표소이다. 예전에는 한탄강의 절경을 감상하려면 배를 타야만 했지만 이제는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걷으며 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지도

 

순담 매표소를 통과해 한탄강 주상절리와 첫 대면을 하는 순간,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강 건너편으로 방금 지나온 순담계곡이 내려다보이고 곡선의 부교 옆으로 순백의 설경이 펼쳐진다. 지금부터는 허공에 매달린 잔도를 따라 1시간 반 정도 걸으며 주상절리를 감상하는 짜릿하고 흥겨운 시간을 갖게 된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에서 내려다 본 순담계곡

 

절벽 옆으로 난 길을 걸으니 잔도임이 실감이 난다. 잔도는 격자형 철재로 되어있어서 강물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강바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혹여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아래는 보지 말고 걷는 것이 좋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암반의 모양도 계곡의 모습도 아래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어 이곳은 새하얀 겨울왕국이다.

 

한탄강을 발아래 두고 협곡 사이를 걷는 주상절리길 잔도

 

한탄강 주상절리길 곳곳에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세워져 있어서 남은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주상절리길 중간에 3개의 스카이전망대와 곳곳에 쉼터가 있어 걷다가 힘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탄강 직벽의 검은 현무암과 흰색의 눈이 연출하는 한 폭의 수묵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특히 반원으로 된 다리 상판 부분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는 스카이전망대는 마치 허공 위를 걷는 느낌이어서 아찔한 스릴도 느낄 수 있다. 

 

한탄강의 속살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스카이전망대

 

마치 병풍을 쳐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수직의 주상절리를 바라보면서 지루할 새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주상절리길의 드르니 매표소에 도착한다. 물 윗길과 잔도 약 12km를 5시간 정도 걷는 대장정을 끝내고 근처 매운탕 집에서 한탄강에서 잡은 잡어로 만든 어탕국수와 도리뱅뱅이로 식사를 한다. 운동 후에 맛보는 음식이라 미각의 즐거움은 더해진다. 

 

겨울을 느끼고 싶은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하얀 설원과 얼음 위를 걸고, 허공에 매달린 잔도에 서서 주상절리의 설경을 감상할 수 있는 철원으로 떠나 보자.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yeogb@naver.com

 

 

작성 2023.01.16 11:31 수정 2023.01.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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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