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나일강 따라 떠나는 신화의 땅 이집트

투탕카멘의 역설(逆說)

여계봉 선임기자

 

아침 일찍 나일강 강변에 있는 호텔을 빠져나와 카이로 시내로 들어서니 시가지 중심인데도 건물색이 우중충하고 짓다가 만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눈에 띈다. 건물이 완공되면 내야 할 세금 때문에 주로 꼭대기 층은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에 입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이로의 아침 거리는 차선도 없는 도로를 곡예 운전하는 출근길 차량으로 북새통이다.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심을 겨우 뚫고 시내 중심부에 있는 이집트 국립 박물관에 도착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박물관 근처는 전 세계 사람들이 타고 온 대형 관광버스에 둘러싸여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른 시간인데도 기념품을 팔려는 상인들과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과거 이집트인들의 찬란한 고대 문명을 보러 박물관으로 들어서는 필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는 이집트 국립 고고학 박물관

 

 

이집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다. 이곳을 찾지 않고는 이집트 여행이 완성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12만 개가 넘는 예술품들로 가득 메워진 이집트 박물관을 통해 고대 이집트의 영광스러웠던 역사를 되돌아보고, 화려하고 경이로웠던 문화 발자취도 찾아볼 수 있다.

 

카이로 중심부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 유물과 관련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초부터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함부로 해외에 반출되는 것을 우려한 프랑스 고고학자 A 마리에트가 1858년 카이로 교외에 세운 이후 1902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박물관 경내에 있는 프랑스 고고학자 A 마리에트의 묘소

 

카이로 국립 박물관은 1만 년 이집트 역사가 응축된 문화재의 보고(寶庫)다. 그중 신왕국 18왕조 파라오 투탕카멘(재위 BC1334∼BC1325년)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은 박물관의 백미(白眉)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대 왕조의 파라오였다. 기원전 1341년에서 기원전 1323경까지 살았던 인물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약 10년간 재위하다 18세에 급사한 ′비운의 소년 왕′이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재위했던 평범한 인물이어서 역사에서 사라진 ′잊힌 파라오′였다. 하지만 그가 쟁쟁한 파라오들을 제치고 가장 유명한 인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파라오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발굴된 무덤 속의 유물 때문이다. 

 

박물관 1층에 있는 스핑크스 모양의 투탕카멘 석상

 

투탕카멘은 박물관 2층에 있다. 2층 특별 전시실과 그 앞의 복도에는 그의 무덤에서 발굴된 3,500여 점의 유물 중 황금 관, 황금 마스크, 전차, 목관, 침대와 의자, 항아리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별 전시실 내부에 있는 황금 마스크와 황금관 등 주요 유물은 사진 촬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1922년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에서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열자 묘실을 지키고 있던 아누비스와 마주하게 된다. 길이는 3피트 정도로 발견 당시에는 파라오를 수호한다는 의미로 목에 화환이 걸린 채 세워져 있었다. 나무를 깎아 검은색 수지를 바른 다음 황금으로 귀와 눈, 목걸이 등에 금박을 발라 제작했다고 한다. 

 

묘실을 지키던 죽은 자들의 신 아누비스

 

투탕카멘 묘실 한가운데에 떡하고 자리 잡고 있었던 황금빛 상자 캐노피 신전은 미라를 만들 때 장기를 담은 카노푸스 단지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는데, 이시스, 네프티스, 네이트, 세르케트 여신이 양팔을 뻗은 자세로 관을 수호하고 있다. 틀은 나무를 깎아 만들었고 그 위에 금박 판을 붙였다. 

 

투탕카멘 왕의 간, 위, 폐, 내장의 장기를 보관한 4개의 카노푸스 단지에는 투탕카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당시에는 죽은 왕이 사후에도 계속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미라의 내장을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투탕카멘의 카노푸스 단지를 넣었던 황금 상자 캐노피 신전(사당) 
투탕카멘의 장기를 담았던 카노푸스 단지

 

 

투탕카멘의 황금 의자는 황금 마스크와 함께 투탕카멘의 보물 들 중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다. 보통 신왕국 시대의 왕좌들은 팔걸이가 여성의 머리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왕좌는 팔걸이가 사자로 장식되어 있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왕좌 자체는 나무로 만들었고 금박으로 덮은 후 준보석, 방해석, 색유리 등으로 화려하게 상감했다. 등받이 그림 속에서 투탕카멘은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쉬고 있고 아내 안케세나멘이 남편의 어깨에 향유를 발라주고 있다. 발판에는 당시 이집트가 정복한 민족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의자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물인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는 고대 이집트 아마르 시대의 예술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걸작으로, 길이 54㎝에 무게가 무려 10.23㎏이다. 매끄럽게 가공된 외양과 아름다운 선으로 소년 왕 투탕카멘을 신격화한 모습을 표현한 황금마스크는 마스크는 눈에는 석영이, 눈동자에는 흑요석이 박혀 있다.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물관을 방문하도록 하는 신비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영생을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망자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시신을 처리해 장례를 치렀다. 처음에는 생전의 모습을 본뜬 조각을 빚어 무덤에 넣었고, 차츰 얼굴 모습을 그대로 본뜬 마스크를 씌워 생전 분위기를 살려냈다. 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아 영생과 잘 어울리니 신으로 대접받는 파라오는 황금 마스크를 쓰게 된 것이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출처: 이집트 관광청 홈페이지)

 

 

투탕카멘의 또 다른 유물인 관은 파라오의 모습으로 만든 3개의 황금관이 포개져 있으며, 이 관들은 다시 거대한 석관 안에 담겨 있다. 무게가 100kg가 넘는 황금관에 조각된 투탕카멘은 갈고리와 도리깨를 손에 쥐고 양팔을 X자 모양으로 가슴에 얹고 있다. 이는 사자(死者)의 신, 오시리스의 모습이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죽으면 사후 세계와 부활을 관장하는 최고의 신 오시리스가 된다고 믿었다. 현재는 오시리스 하면 투탕카멘 관의 모습이 대표적으로 꼽힐 정도로 투탕카멘은 가장 유명한 파라오이자 오시리스가 되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황금 유물들

 

 

투탕카멘의 유물들은 카이로 박물관에서 볼 수 있지만, 그의 무덤은 룩소르 서안에 있는 왕들의 계곡에 있다. 한쪽으로는 나일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황량한 산들이 이어지는 황갈색 석회암 절벽 아래로 무덤들이 늘어서 있는 왕들의 계곡에는 당시 파라오의 매장품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피라미드 등을 피해 만든 왕릉이 구석구석 들어서 있다. 인적이 드문 계곡 바위틈이나 벼랑에 만들어진 약 60여 개의 무덤은 투탕카멘 묘실을 빼고 이미 오래전에 모두 도굴되었다.

 

파라오들이 묻혀 있는 왕들의 계곡 입구

 

 

투탕카멘의 죽음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남매 사이인 부모의 근친 혼인으로 태어나자마자 보행이 불편했으며 구개열로 인해 언어 장애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라의 두개골이 손상된 것을 보고 정치적 음모에 의해 어린 왕이 둔기에 맞아 암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지만, 투탕카멘의 미라를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분석한 연구팀은 유전적 질환으로 면역 체계가 약했던 투탕카멘이 다리 골절상을 입은 상태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젊은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왼쪽 큰 입구가 람세스 6세, 오른쪽 작은 입구가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KV62는 투탕카멘 무덤이 왕가의 계곡에서 62번째로 발굴되었다는 뜻이다.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람세스 6세의 무덤은 도굴꾼들에게 진작 털렸는데 그 옆에 조그마하게 붙어 있어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투탕카멘 무덤은 운 좋게도 3,300여 년의 긴 세월을 버티온 것이다. 람세스 6세의 무덤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색색이 벽화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무덤 내부에 기둥과 기나긴 복도, 그리고 널찍한 공간들이 있지만 투탕카멘의 무덤은 좁아터진 복도와 현실(玄室)에는 조각이 아닌 그림 벽화만 그려져 있으니 파라오의 무덤치고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단번에 비교가 된다. 무덤 입구에서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복도를 지나면 나오는 작은 현실에는 투탕카멘의 미라가 누워있고, 그 옆에는 시신을 안치했던 석관이 놓여있다. 

 

1922년 11월 26일, 영국인 하워드 카터가 봉인을 뜯고 처음으로 문을 연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몇 겹으로 쌓인 관과 미라가 있는 묘실, 대기실과 보물 창고, 곁방에는 3,500여 점의 보물들로 가득했었다. 이제 이들은 모두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과 새로 지은 문명 박물관으로 이사 가고, 무덤의 차가운 바닥에는 투탕카멘의 검은 미라만 누워있다.

 

 KV62 투탕카멘 무덤에는 그의 미라만 남아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영생을 얻으려고 죽은 뒤에 신으로 부활해서 자신이 머물 궁전을 건설했지만 그 대가는 엄청났다. 수많은 돈을 퍼부은 소위 잘 나가던 파라오의 무덤은 도굴꾼에 의해 매장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참혹하게 털려 싼값에 팔려 나갔다. 그들이 쏟아부은 돈의 수천만분의 1도 안 되는 싸구려 값에 말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잊힌 ‘비운의 왕’ 투탕카멘은 무덤에서 부활하여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을 대표하는 파라오의 대명사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투탕카멘의 역설(逆說) 아닌가.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02.17 10:59 수정 2023.02.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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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