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나일강을 따라 떠나는 신화의 땅 이집트

화강암 석재 실은 펠루카 뱃길 따라 아스완에서 에디푸까지

 

수천 년 고대문명의 흔적은 나일강 주변 도시에 낱낱이 흩어져 있다. 누비아인의 삶이 서린 아스완, 파라오의 무덤이 웅크린 룩소르를 거친 강줄기는 카이로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든다. 북아프리카를 지나서 이집트의 사막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나일강은 이집트의 고대문명을 태동시킨 젖줄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스완에서 남쪽 수단과의 국경까지 이어지는 사막지대를 황금의 교통로라는 의미로 ‘누비아’로 불렀다. 아스완의 화강암은 뱃길로 옮겨져 콤옴보, 에디푸, 룩소르 등 나일강 옛 도시들의 신전을 쌓는 재료로 쓰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스완의 채석장에서 신전을 쌓는 석재인 화강암을 캐내어 전통 돛단배 펠루카에 싣고 나일강 뱃길을 따라 아스완, 아부심벨, 콤옴보, 에디푸, 그리고 룩소르에 신전을 세웠다. 오늘은 수천 년 전 그들의 행적을 따로 가 보기로 한다.

 

채석장은 아스완의 나일강 동쪽 강가에 있는데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 신전의 탑문과 신상 등에 사용된 화강암이 주산지이다. 아스완의 화강암은 붉은색인데 색깔이 고와서 이집트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 심지어 로마까지 수출됐다고 한다. 그런데 채석장 암반 곳곳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어떻게 저렇게 크고 단단한 화강석을 절단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나무쐐기와 물이었다. 화강석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나무쐐기를 박은 다음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해 결국 화강암이 갈라진다. 

 

채석장의 거대한 화강암 암반에는 곳곳에 작은 구멍이 파여있다.

 

현재 이 채석장에는 과거에 돌을 캐다가 미완에 그친 오벨리스크 하나가 바닥에 놓여있다. 길이가 41m, 무게는 1267t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반가공된 오벨리스크인데 만약 이것이 완성돼 나일강 강변 어딘가의 신전에 세워졌다면 현존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오벨리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최대 크기이지만 금이 가는 바람에 누워있는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고대 나일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파라오는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신과 교감하기 위해 모든 신전에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이 화강암이 이렇게 미완의 상태에서 남겨진 이유는 이집트의 걸출한 여성 파라오인 핫세수트의 오벨리스크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석재를 다듬는 중 화강암에 금이 가는 바람에 더이상 상품 가치가 없어지자 작업이 중단된 채 방치된 것이다. 

 

위에서 보면 오벨리스크 중간에 금이 간 자국이 보인다.

 

채석장에서 가공된 화강암은 나일강 강가로 이동하여 펠루카에 실려 나일강 강변에 있는 신전으로 이동한다. 필자도 아스완의 나일강 강가에 정박 중인 크루즈에 오른다. 나일강 크루즈는 이집트 룩소르나 아스완을 기점으로 중간 기착지인 콤옴보, 에드푸, 에스나 같은 도시를 들러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크루즈 상품이다. 3박 4일 혹은 4박 5일 상품을 선택할 수 있으며 2등급에서 6등급 크루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나일강 크루즈의 갑판에서 바라보는 나일강의 풍경은 압권이다.

 

필자가 탄 크루즈는 카리브해의 크루즈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길이 100m 정도에 객실이 100여 개가 되는 큼직한 5성급 크루즈다. 1층에는 리셉션, 2층은 라운지와 객실, 3층은 레스토랑과 객실, 갑판에는 아담한 수영장과 선베드, 푹신한 소파 등이 마련된 넓은 휴게 공간이 있다. 객실은 킹사이즈 침대 2개와 2인용 탁자, 그리고 빈티지한 옷장과 욕실을 두루 갖춘 고급 호텔 수준이다. 크루즈 상품에는 기착지 투어, 펠루카 체험, 마차 투어 등이 포함되어 있고, 식사는 배 안의 레스토랑에서 제공한다. 모든 식사가 뷔페이며 음식은 중동과 서양 요리 위주로 나오는데 우리 동양인들에게도 잘 맞는 편이다. 

 

나일강에 떠 있는 펠루카 너머로 귀족들의 무덤이 보인다.

 

아스완을 출발한 크루즈는 새로운 여행지를 향해 힘차게 항해를 시작한다. 아스완 북쪽 49㎞ 지점에 있는 콤옴보에 기항한 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근에 있는 콤옴보 신전으로 향해 걷는다. 기원전 395년에 완공된 콤옴보 신전은 에스나 신전과 함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대표 신전으로 꼽히는데, 순수 정통 이집트 양식에 그리스·로마 건축 색채가 적지 않게 가미되어 그리스의 헬레니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꽃봉오리 모양의 열주에서 헬레니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콤옴보 신전

 

콤옴보 신전은 악어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소베크 신’과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두 개의 신전을 결합해 하나의 신전으로 만들었는데, 지금부터 20여 년 전 비디오테이프와 CD 재생이 가능한, 두 개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전자기기를 ‘콤보’라고 불렀는데, 매와 악어, 두 신을 같이 모시는 콤옴보 신전에서 용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매 형상의 호루스 신과 악어 모습의 소베크 신 부조

 

보통 이집트 신전이 동서축으로 건설된 것과 달리 콤옴보 신전은 남북을 축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굵은 파피루스 꽃봉오리 기둥이 메타세콰이어길처럼 도열한 첫 번째 열주실을 지나면 호루스와 토트 신의 뜻에 따라 새로운 지배자인 프톨레마이오스 7세가 이어받았음을 나타내는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집트 점령 이후 이집트를 통치했던 그리스 출신의 파라오다.

 

콤옴보 신전의 맨 뒷부분에 가면 당시에 사용한 의술 도구와 호루스 신이 의학 담당이라는 내용, 그리고 의학자의 자세에 관한 글귀가 음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신전을 지을 때보다 약간 앞선 시대인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영향을 받은 듯하며, 동시에 고대 이집트인들의 의학 수준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외과 수술에 사용된 도구들을 그린 부조물

 

콤옴보에는 악어로 가득한 섬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 이집트 사람들은 두려운 악어의 존재를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신전 곳곳에는 파라오가 소베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부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물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은 악어를 포함한 동물들을 미이라로 만들었는데 신전 근처에는 300여 구가 넘는 악어 미라를 보관하고 있는 악어 박물관이 있다.

 

악어 박물관의 악어 미라

 

콤옴보 신전을 돌아본 뒤 크루즈로 돌아와 오랜만에 깊은 수면에 빠져든다. 여행자는 잠들어도 배는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간다.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뜨니 크루즈는 벌써 에드푸에 기항해 있다. 배에서 내리니 강변에는 마차가 줄지어 서 있다. 20대 초반인 젊은 마부가 ″람보, 람보″를 외치며 채찍질을 한다. 병약한 람보가 끄는 마차는 에드푸 시내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에드푸 신전으로 달린다. 

 

에드푸 신전은 1860년 마리에트가 신전 주변의 모래를 걷어내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인 기원전 237년에 짓기 시작해 100년 걸려 완공된다. 신전의 크기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신전 중 최대규모인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이어 두 번째이고, 모래 속에서 지난 2천 년 이상을 버텨온 덕분으로 신전 전면 윗부분이 약간 손상을 입었을 뿐 원래의 모습 거의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있는 고대 유물′로 알려져 있다.

 

에드푸 신전의 거대한 탑문

 

탑문 양쪽으로 큰 부조가 있는데 파라오가 적을 제압한 뒤 호루스 앞에서 계시의 몽둥이로 적을 내리치는 장면이다. 그리고 탑문 입구에는 양쪽에 매의 형상으로 화신(化神)한 호루스가 당당하게 서 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호루스는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그의 아내이자 최고의 여성 신인 이시스(Isis)의 아들이며,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의 남편이다. 어머니 이시스가 동생 세트에게 살해당한 아버지 오시리스를 부활시켜 주문의 힘으로 잉태해 태어났는데, 훗날 성인이 된 호루스가 세트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게 된다. 호루스의 상징으로 ′우제트(Udjet)′라 불리는 눈 모양은 ′안전′을 의미하는 부적의 뜻으로 사용된다. 현재 이집트 항공기의 수직 꼬리에도 우제트가 그려져 있다.

 

신전을 지키고 있는 호루스의 화신, 매의 석상

 

호루스의 상징인 눈 모양의 ′우제트(Udjet)′ 목걸이 

 

신전의 구성과 축조양식은 건축 시기가 거의 같기 때문인지 전날 본 콤옴보 신전과 비슷하다. 첫 번째 홀과 두 번째 홀은 열주실로 우람한 돌기둥들이 가득한데 모든 기둥의 벽면에는 상형문자나 그림이 빼곡히 차 있다. 신전은 고대 이집트 유적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지만 2,3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겪은 평지풍파를 대변하듯 여기저기 훼손된 곳도 많다. 양각의 벽화는 일부러 긁어낸 듯 여기저기 파여있고, 신전의 내부 천장은 시꺼멓게 그을려있다. 고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살던 콥트 기독교인들이 신전을 교회와 숙소로 사용하면서 유물들을 많이 훼손했다고 한다.

 

 천장에 그을린 자국은 콥트 교인들이 숙소로 사용하면서 불을 피운 흔적이다.

 

제일 안쪽에 있는 지성소는 파라오와 제사장만 출입하던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안쪽 벽면에 신상안치소가 있고 그 앞에는 ′태양의 나룻배′가 있다. 이 나룻배는 신상이 나들이할 때 사용한 유물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신전의 지성소에 안치된 ′태양의 나룻배′

 

크루즈로 돌아와 선실 문을 여니 침대 위에 흰색 코브라 한 마리가 몸을 세운 채 노려보고 있다. 선원들이 호텔 방에 있는 큰 타올 하나를 말아서 꾸민 데코레이션이지만 상·ᆞ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동물이 독수리와 코브라인 것으로 미루어 의미 있는 이벤트에 고마움을 느낀다. 

 

선실 창밖으로 나일강 강물 따라 흐르는 수천 년의 이집트 문명은 이제 3박 4일의 크루즈 여행 종착지이자 고대 이집트 왕국의 중심지 룩소르로 이어진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02.20 11:22 수정 2023.02.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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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