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장맛비

김태식

우리나라는 지형적인 조건으로 인해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장마 기간이 찾아온다. 장마 기간에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비를 몰고 온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나름대로 대비를 하긴 하지만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수마水魔가 휩쓸고 간 자국은 그 상처가 너무 크다. 여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도 걱정이지만 너무 많은 비를 뿌려도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게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레 유년 시절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많은 비로 인해 내가 살던 집이 완전히 물에 잠겼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60여 년 전, 그 시절의 시골집은 초가지붕이 대부분이었고 집 안의 내벽은 황토흙이었다. 요즈음 같이 배수시설도 좋지 않았고,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해마다 장마 때에는 많은 비가 내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연재해를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면 집집마다 야단법석이다. 당장에 집을 나가도 밥을 해 먹을 솥을 챙기고 입을 옷을 조금 준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그러한 사소한 물건을 찾는 동안에도 마당에 금세 차오르는 물은 야속하기 짝이 없이 빠른 속도로 장독대나 헛간을 집어삼켜 버린다. 무릎까지 차오른 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전지대로 옮기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다. 학교는 방학을 했기에 책이나 가방을 챙기는 일은 뒷전이었다. 

 

주로 밤에 많은 비를 뿌리는 장마의 특성상 어둠은 또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어느새 마당을 비롯하여 동네의 오솔길은 경계의 구분이 없는 수영장이 되고 만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빗물과 바다에서 들어오는 바닷물이 겹치는 곳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물이 불어난다. 뒤로는 산이요 앞에는 바다이니 이를테면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인지라 딱히 피해 갈 만한 안전지대는 없다. 산으로 올라가자니 산사태의 우려가 있고 앞으로 나가자니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오니 그랬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모두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탓에 서로를 도와 줄 여유도 없다.  

 

비도 잠시 숨을 쉬느라 멈추면 어느새 아침이다. 밤새 위험한 상황을 잠시 피하기 위해 머물렀던 딱딱한 교실 바닥은 축축하기만 하다. 집안에 차 있던 바닷물과 뒤섞인 빗물이 흘러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초조하고 지루하다. 아침 식사용으로 동사무소에서는 건빵을 나눠 주지만 목구멍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물에 잠긴 집이 걱정되어 뜬눈으로 밤을 보낸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식구들에게 줄 먹을거리를 찾아보아도 주위는 온통 물에 잠긴 것뿐이다. 장롱도 물에 잠겼으니 갈아입을 옷도 변변치 못하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물이 빠지고 난 뒤의 자국은 더욱 처참하다. 산에서 빗물과 함께 내려왔던 흙과 돌이 마당에 깔리게 된다. 그 위를 걸어가면 발이 빠져서 어린이들의 무릎까지 닿는다. 미리 옮기지 못했던 장독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둥둥 떠다니다 깨어진 그릇도 여러 개가 눈에 띈다. 여름인데도 이불은 모두 젖어 있어 잘 때 덮을 이불이 없어 새벽에는 추위도 느껴진다. 

 

그 당시에 국가가 수재민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전염병 예방을 막기 위해 소독약 한 번 뿌려 주는 것이 전부였다. 국민들이 가난했음은 물론이고 나라도 가난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개인도 부자 국가도 부강해지긴 했지만 수해를 입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 자신도 마음이 아려온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08.01 11:05 수정 2023.08.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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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