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말래카해협의 해적

김태식

여름이라는 계절에는 열대성 저기압이 발달하여 태풍으로 바뀌어도 항해하는 배는 밤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그리고 바다의 어둠은 무거운 엔진 소리도 감싸 안는다. 선내의 적막을 깨지 않으려 새벽의 발자국을 조심스레 내디딘다. 하지만 그 고요한 적막을 시샘하는 듯한 소리가 있다. 그것은 평온함을 내팽개치는 아우성이었다.  

 

“현재 자신의 침실에 해적이 있다면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대응할 것.” 

 

당직사관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말래카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에서 한 밤중의 긴급한 선내船內 방송은 피곤하게 잠든 전 선원들을 깨운다. 1980년대 중반, 현지해상시간 새벽 2시경에 항해 중인 외항선박에 반갑지도 않고 예상치 못한 동남아시아의 해적이 올라 온 것이다. 

 

일등항해사의 방에 들어서자 공포감이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일항사의 입은 비닐테이프로 막혀 있었고 손은 등 뒤로 묶인 채 앞으로 구부려져 있다. 좁은 공간에서 두려움과 공포감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 몸이 움츠려든다.  

 

일항사는 신음 소리만 낼 뿐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침실에 마구 흩어져 있는 옷들과 옷장의 문짝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그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말해준다. 

 

“으으……”

 

일등항해사가 몸을 일으키려 한다. 정신이 조금 드는 모양이다. 

 

“일항사, 이제 정신이 조금 드는가?” 

 

일항사의 얼굴은 아직도 겁먹은 표정이라 몹시 초췌해 보인다. 해적들은 일항사 방을 먼저 약탈하고 그다음에 선장 방을 노렸으나 당직자에게 발각되었다. 선내의 방송에 위급함을 느끼고 재빠르게 철수했던 것이다. 

 

높은 엔진 소리를 내며 싱가포르를 거쳐 말래카 해협을 통과하는 외항선은 칠흑의 어둠을 헤치며 인도양으로 서서히 항진하고 있다. 

1시간쯤 지나고 정신을 가다듬은 일항사는 지나간 10분간의 악몽을 힘들어하며 되새긴다. 

 

“잠결에 나의 침실문의 열쇠를 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그는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몸을 떨고 있다. 

 

“문 잠금 장치를 다시 채우려는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왔습니다.” 

 

숨이 찬 듯 일항사는 연신 물을 들이킨다. 

 

“먼저 그들은 달러를 내어놓으라고 했습니다.” 

“없다고 하자, 그 놈들 중 한 명은 권총을 뽑아 들어 나의 귀밑에 겨누었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구나 싶었습니다.” 

 

이미 손이 묶인 일항사는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한 명은 삼국지의 장비가 썼음직한 큰칼을 들고 침실의 여기저기를 뒤지고 있었다. 일항사는 양팔을 벌려 칼의 크기를 표시한다. 

 

“인상착의는 어땠는가?” 

“몸집은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동남아시아계의 까무잡잡한 피부의 얼굴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눈 아래로 얼굴에는 복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한다. 

 

2인조 해적인 그들은 가진 것을 모두 내어놓지 않으면 죽인다고 칼을 목에 대고 있었다. 총구는 옆구리로 향하고 있었으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목숨만이라도 붙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침실에서 물건을 훔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이었다. 하지만 일항사에게는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였을 터이다. 

 

40여 년 전의 국제항로에는 해적이라는 태풍이 도사리고 있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08.29 10:48 수정 2023.08.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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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