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죠지의 26번째 생일이다. 어제 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우울한 저녁을 보내고 나서, 지금 일어나보니 아직도 믿기 힘든 가라앉은 기분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용기를 내서 뭔가를 축하해 주기로 결심했다.
내일이면 우리는 산티아고에서 각자 다른 길로 간다. 나는 날짜에 대해 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정해진 날이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이드, 죠지와 하르트무트는 여기에 맞춰 그들의 일정을 조정했다. 내일 하르트무트는 비행기로 드레스덴의 집으로 돌아가고, 제이드와 죠지는 걸어서 피니스테레로 갈 것이다.
원래 나는 오늘 차를 하나 빌려서 순례여정에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지구의 끝이라고 하는 피네스테레를 여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오늘 함께 있고 싶어 하기에 아무래도 지구 끝은 나를 좀 더 기다려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피네스테레 도보여행을 위해 여름을 지나고 다시 산티아고로 오기로 했다. 이것이 아무래도 최선의 답인 것 같았다. 첫 번째 논의해야 할 것은 가까운 산 프란시스코 교회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수도사들은 기도를 하고 있었고, 젊은 오르가니스트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아주 평화스러운 일상에 감사함을 느껴졌다.
하르트무트가 문자로 안부를 물으면서 아침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우리는 만나서 가까운 카페로 갔다. 그러나 나는 식사를 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고, 나만의 방법으로 커피와 크로상 빵에다 대고 흐느꼈다. 좀 더 용기를 갖자고 내가 나를 다독이며 무척이나 노력했다. 제이드와 죠지가 합류할 때 까지 약간 기분이 나아졌고, 우리는 산티아고의 아름다운 옛 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산티아고 중심부는 목가적이다. 첫째, 무엇보다 거리가 모두 보행자전용이다. 큰 광장 주변이 독특하게 큰 빌딩들로 둘러싸인 것과는 별도로 산티아고는 작은 골목들과 멋진 꼬부랑길로 휘감긴 대표적인 동네였다. 작은 바와 식당 그리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지만, 특별하고 귀여운 상점들과 갤러리들이 있었다. 길거리를 도는 코너마다 아름다운 교회도 있었다.
두 번째로, 산티아고에는 언덕이 많다. 그래서 자칫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여러 번 지나다닌 곳이라 해도 거리마다 마치 탐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그런 언덕길을 걷고 있었을 때 나는 문자 한 통을 받고는 멈춰 섰다. 도날드 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수아! 다시 순례하는 것 잘하고 있네요, 대단해! 잘 들어 봐요. 오늘 나 대신 어느 곳에 좀 다녀와요. 전화해도 돼요?’
나는 도날드와 알고 지낸 지가 거의 20년이 된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글래스고에 있는 클라이드 강가의 바지선에서 공연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친구 캐빈 맥크라에가 주선하여 우리들이 첼로 듀엣으로 도날드의 밴드인 캐퍼캐일리와 함께 연주를 했었다. 그것은 캐빈과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캐빈은 약 10년 전에 비극적으로 죽었다.
내가 고든을 만나서 결혼한 이래, 나는 설명하기 힘든 우연의 일치를 보고 놀랐었다. 고든과 도날드는 스코틀랜드 서부 고원지대의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인 오반에서 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십대 때 글라리넷 레슨도 함께 받았었다.
도날드도 지금 순례여행을 마쳤다. 그러나 자전거로 한 여행이었다. 그가 내 순례여정을 뒤따른 것이 아주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도 갑작스런 핸드폰 문자에 깜짝 놀랐다. 물론 나는 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하면서 이것이 지난 5주 동안 처음으로 우리 동네에서 온 사람과 하는 통화라는 것을 알았다.
도날드는 내가 혹시 점심 약속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오늘이 죠지의 생일이라 내 순례여행 동료들에게 점심을 한턱 내기로 되어있는데 그들을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 일이라면 딱 맞는 장소가 하나 있다고 그는 신이 나서 말했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니 꿈만 같았다. 마치 내가 우주에 대놓고 전화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답이 오는 것 같았다. 몇 분 후 다시 문자가 왔다. ‘수아! 16번 레스토랑에 4명을 예약해 놓았어요. 주소는 루아 에스 페드로 16번입니다. 순례길 끝나는 곳에서 약 400야드 떨어져 있어요. 2시에 가서 알바리노를 찾으세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축하합니다.’
내 우울함을 치유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것이다. 타이밍과 생각과 그 친절함 그런 것들이 순식간에 기분을 명쾌하게 고무시켜 주었다. 그것은 나와 내 지인들 간의 아름답고 행복한 또 다른 보물찾기였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가면서 우리는 어제 제이드와 죠지가 발견한 히피 상점을 찾아냈다. 착하고 재밌는 제이드 때문에 무척 즐거웠다. 그녀는 하르트무트와 나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하나씩 입혀주었다. 그리곤 우리는 산티아고 거리로 뛰쳐나와 그 옷을 입고 당당하게 활보했다. 그리고 얼간이 같은 사진을 마구 찍어대며 신나게 웃어댔다.
16번 레스토랑은 바깥에서 보면 있는지도 잘 분간이 안 되었다. 지나가는 나그네라면 그냥 지나칠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문들이 열리고 마치 다른 별천지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래층에는 사람들이 꽉 차서 활기가 넘치고 여러 행사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도날드에게 들은 대로 나는 알바리노를 찾았다. 잠시 동안 그가 얼마나 바쁜 웨이터일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오래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로 미소를 띤 평범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의 친구인 도날드를 칭찬하는 인사를 주고받은 후 구석에 있는 우리 자리로 비집고 들어갔다.
나는 가족들이 많은 애들을 데리고 외식을 하러 나온 것을 보고 놀랐다. 아마도 부활절 주말이라 그랬을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가족끼리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히 어린이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웨이터에게 추천하라고 한 점심은 지방의 가정 요리로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은 문어보다는 구운 문어로 달라고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구운 문어는 지난번에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 번째 와인을 시켰을 때, 첫 번째 병은 이미 도날드가 사 놓은 것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 한발 앞서가는 친절함에 감격했다.
맛난 음식과 좋은 친구들 덕분에 내 우울함은 행복으로 변해가고 이 운명 같은 순례에서 나와 함께 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