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돌곶이에서 청량리까지, 가을 감성 여행

여계봉 선임기자

 

가을 정취 가득한 왕릉 숲길에서 가을의 감성을 만끽해보자.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일반인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던 은밀한 공간 의릉(懿陵) 가는 길은 6호선 돌곶이역에서 시작한다. 돌곶이(石串)란 지명은 천장산 동쪽 지맥에 마치 꼬치처럼 검은 돌이 박혀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돌곶이역 8번 출구로 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방향으로 길을 잡고 10 여분 정도 걸으면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의릉이 나온다. 

 

돌곶이마을은 석관동(石串)의 순우리말이다. 

 

오랫동안 금기의 영역이었던 의릉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무려 43년 만의 일이다. 의릉 주위에 있던 국가안전기획부(구 중앙정보부)가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1996년 의릉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능에 들어서면 명당수가 흐르는 금천교(禁川橋)를 건너야 한다. 금천교는 속세와 능역을 구분하는 다리다. 정면으로 홍살문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정자각, 비각이 있다. 능은 병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난간석을 설치했다. 그리고 난간석 밖으로는 망주석, 장명등, 문무석, 말, 호랑이 등이 있다. 천장산 자락에 자리한 의릉은 다른 능에 비해 유난히 조용하고 한적해 휴식을 취하거나 명상을 하기에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다. 

 

의릉과 천장산 

 

′하늘이 숨겨놓은 곳(天藏山)′이란 이름을 지닌 천장산(140m)은 회기동, 청량리동, 석관동에 걸쳐있다. 풍수지리상 명당 터여서 조선 왕조는 홍릉, 의릉, 영휘원·숭인원 같은 왕족의 무덤을 천장산 자락에 조성했다. 의릉에는 경종뿐 아니라 경종의 왕비 선의왕후 어씨 능도 같이 있다. 선의왕후는 경종이 서거하고 6년 후 26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의릉은 좌우 쌍릉이 아닌 앞뒤 능이다. 즉 앞이 선의왕후, 뒤가 경종이다. 이처럼 능을 쓴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 능이 좁아 좌우 쌍릉을 쓸 수 없었다는 설 등이 있다.

 

경종과 선의왕후릉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은 비운의 왕이었다. 아버지 숙종이 어머니를 사사(賜死)했던 트라우마를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았던 경종. 몸과 마음의 병으로 시달려 온 경종에게 영잉군(훗날 영조)이 생감과 간장게장으로 차린 상을 올렸는데 이를 먹고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는 경종에게 영잉군은 다시 인삼과 부자를 올렸다. 결국 경종은 36세의 젊은 나이에 창경궁에서 서거하고 만다. 상극(相剋)인 음식을 올렸고 열증이 있는 경종에게 인삼과 부자를 처방한 것에서 비롯된 독살설은 영조에게도 평생 트라우마가 된다.

 

의릉을 둘러보고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걸으면 2층짜리 건물 하나가 나타나는데 과거 중앙정보부 강당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바로 이 강당에서 1972년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남북은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한 공동성명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3대 통일 원칙을 밝힌 것이다.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구 중앙정보부 강당 건물

 

1시간 정도 의릉을 둘러본 후 ′천장산 하늘길′을 오르기 위해 한예종 별관을 지나서 이문동 숲속 도서관까지 가면 ′천장산 하늘길′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천장산을 오르는 나무데크를 따라 홍릉 숲길을 따라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 국립산림과학관과 KAIST가 있다. 홍릉 숲은 동대문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라고 자부하는 국립산림수목원 산하 숲이다. 수목원과 이어지는 1.7km의 천장산 하늘길에서 가벼운 등산과 여유로운 산책도 즐길 수 있다.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방면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장산 전망대

 

등산이 싫다면 국립산림과학원(구 홍릉수목원) 맞은편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 벤치나 사적 영휘원 텅 빈 툇마루에 앉아 책도 읽고 멍 때리기를 해도 좋다. 세종대왕기념관 담 너머에 있는 영휘원과 숭인원은 조선시대 고종의 후궁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嚴氏)와 순헌귀비의 손자 이진의 무덤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생모인 엄귀비는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고종의 아관파천을 주도하고, 양정고등학교, 진명여고, 숙명여대 전신인 양정의숙, 진명학원, 숙명여학교 등 교육기관 설립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고종의 후궁 엄귀비가 묻힌 영휘원

 

가을이 영글어가는 ′10월의 어는 멋진 날′에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의릉과 원시림 수준의 홍릉 숲길, 그리고 문화유적지들로 이어지는 도심 최고의 산책길을 걷고, 날 머리에 있는 청량리 전통시장에서 볼거리,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yeogb@naver.com

 

작성 2023.10.06 09:28 수정 2023.10.0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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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