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너무 놀란 상태에서 깨어났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고 밖은 환하게 밝아 있었다. 바로 앞에 닥칠 최악의 상황이 두려웠다. 우리는 하르트무트가 공항으로 떠나기 전 8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전날 너무 늦게 자서 제시간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내가 늦잠을 잤다는 것은 나의 기우였고,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음을 알았다. 우리는 지난 이틀 동안에 네 번이나 갔던 그 멋진 커피숍으로 다시 갔다. 죠지의 선물을 만든다고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낸 것을 다시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옛정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핫초코에 럼주를 한 잔 했다.
나는 우리가 있는 커피숍 아래 빵집에서 부활절 달걀을 살 수 있었다. 부활절 달걀을 사고 나니 이별의 슬픔보다는 다시 축제의 분위기가 되어 마치 축제를 하는 것처럼 모두가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하르트무트의 짐을 싸놓은 숙소로 갔다. 짐은 무척이나 커 보였다. 하르트무트가 바르셀로나에서 하룻밤 묵었을 때 그는 아주 센스 있게 여행용 짐을 새로 산 산티아고 가방에 쌌었다. 지금 이 짐은 그것과 비교하면 재미있게도 아주 작았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을 걸었다. 그 길은 가파른 언덕으로 시작되었고, 나는 갑자기 며칠 전 절망적이고 피곤한 상태에서 이 길을 겨우 올라갔던 생각이 나서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나는 하르트무트에게 지팡이를 꽉 쥐라고 했다. 그는 처음에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이더니 이내 재미있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결국 그는 웃고 말았다. 그는 지팡이를 내밀고는 편안한 상태로 눈까지 감고서 언덕 위로 끌어당겨 달라고 몸을 내맡겼다.
그가 짊어진 짐을 생각하면 이것이 내게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태 걸었던 것보다 가장 느린 행보로 걸어갔다. 이런 광경을 보고 제이드와 죠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따라 올라왔다.
나는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고 생각이 들때까지 계속했다. 숨이 가빠서 헐떡거렸고 허파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800km를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몸은 한계점을 초과해 너덜거렸고 말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멈추어 서고 나서 일분이나 이분 정도 지나면 터질 것 같은 허파와 숨 막힘이 정상으로 돌아옴을 알고는 아주 신기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은 건강의 개념이 뭔지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건강은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뭔가를 한 후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들이 앉아서 하르트무트의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여행용 가방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이들의 운동 가방처럼 생겼다. 거기에는 비틀즈의 ‘에비 로드’라는 앨범 아이콘을 패러디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 보니 그것은 ‘산티아고 로드’에 서있는 네 명의 순례자들이었다.
우리는 그들 네 명에게 각자의 사인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르트무트는 ‘거북 인간’으로 나는 ‘스튜어트 리틀’로 하고 죠지는 ‘까미노 죠’ 그리고 제이드는 ‘파텔라피디 밤’으로 하기로 했다. 버스는 정시에 왔고, 우정 어린 작별인사를 하고는 그는 갔다. 이제 우리는 세 명만 남았다.
하르트무트가 없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이 사실을 잊기 위해 제이드는 지난번 처음 우리가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 저녁에 내가 참석하지 않았던 거대한 모임이 있었던 장소를 다시 찾아 가기를 원했다. 웨이터는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고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좀 남았는데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마지막 점심을 무엇으로 주문할 것인지는 아주 간단했다. 문어, 대합조개, 그리고 양 치즈샐러드에 이 지방의 와인을 시켰다. 결국 우리가 이미 파챠란 와인을 주문할 수 있는 지역을 벗어났음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주문했다. 그들이 어렵게 한 병을 구하여 우리에게 주었을 때, 우리들 기쁨은 최고조였다.
그러나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이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내 친구들과 산티아고와 순례여행과 그리고 순례여행에서 만난 운명 같은 인연들과 모두 헤어져야만 한다. 눈물 없이 헤어질 수 없었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이 그러하듯 삶이 그러하듯 만남과 이별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헤어짐의 아픔에서 헤어나기 위해 빨리 잠들어 버렸고 비행기가 사뿐히 이륙하는 것도 몰랐다. 그 다음 내가 알아차린 것은 비행기가 착륙하여 에든버러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한 알았다. 나의 내면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을…….
[이수아]
줄리아드음대 졸업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단원
스코키시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
스코틀랜드청소년오케스트라 상임고문
Mr. Mcfalls Cahmber 창립맴버
이메일 : sua@sua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