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갈대와 철새가 함께 부르는 순천만 연가(戀歌)

여계봉 선임기자

11월 중순의 순천만은 늦가을 황금빛으로 물든 갈댓잎과 눈부시게 핀 갈대꽃에 가을 햇살까지 내려앉아 마치 화려한 카펫을 활짝 펼쳐 놓은 듯하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갈대의 물결은 '사르락사르락' 소리로 이어진다. 지금 순천만은 갈대의 가을 연주가 한창이다.

 

‘황금 갈대들의 향연’ 순천만 갈대숲

 

순천만 습지에 들어서면 둑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근사한 어싱길을 만난다. 어싱(earthing)이란 땅을 딛고 접촉한다는 뜻인데 ‘맨발 걷기’를 의미한다. 발의 촉감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데다,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지면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레포츠가 됐다. 수로 너머로 갈대 군락지와 철새 떼를 바라보면서 4.5km를 걷는 순천만 습지 어싱길에는 건강한 운치가 넘친다.

 

갈대숲과 철새 떼를 조망하면서 맨발로 걷는 순천만 어싱길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40만 평의 갯벌과 갈대밭이 어우러진 순천만 습지의 데크 탐방로를 따라 걸으면서 마주하는 풍요로운 황금빛 갈대가 어쩌면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선한 해풍에 은빛 물결이 파동치는 모습을 보면 온몸의 세포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동감을 느낀다. 갈대밭을 온전하게 보려면 보통 10월 말부터 11월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봄이나 여름이라고 해서 실망할 것은 없다. 봄, 여름이 푸른빛인 순천만의 풍경도 황금빛 갈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갯골에 부는 해풍에 갈대의 은빛 물결이 요동친다.

 

순천만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습지로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는 철새들의 생명의 땅이자 휴식지다. 갈대 아래에서는 짱뚱어나 게와 같은 생물들을 볼 수도 있고, 겨울에는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저어새, 쇠기러기, 청둥오리 등의 겨울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요즘에는 겨울 진객 흑두루미 2천여 마리와 가창오리 4천여 마리가 날아들어 이들이 갈대밭 위에서 펼치는 화려한 군무는 가히 환상적이다.

 

흑두루미가 갈대숲 위를 날며 화려한 군무를 연출하고 있다.

 

순천만의 가을을 조망하는 최고의 장소는 용산전망대다. 순천만 습지 갈대 군락지 사이로 이어진 나무데크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리를 지나 ‘산’이라는 지명이 무색한 작은 언덕을 오르면 그 길 끝에 전망대가 있다. 다리 입구에서 왕복 40분 정도 걸리는데 전망대까지 오를 계획이라면 가벼운 옷차림과 걷기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용산은 용이 순천을 향하고 있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래서 전망대의 위치도 용의 머리 방향에 있다고 한다.

 

용산전망대 가는 숲길

 

전망대에서는 순천만의 탁 트인 전경과 와온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낮에 가도 예쁘지만 보통 일몰 시각에 맞춰 많이 방문한다. 갯벌이 바다에 잠기는 밀물 때만 아니라면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둥글게 둥글게' 원형 갈대군락

 

순천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찾으라고 한다면, 단연 순천만 S자 곡선의 낙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해 질 무렵 황금빛으로 물든 수로가 S자로 흐르는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 풍경을 담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순천만을 찾고 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S자' 갯골

 

갈대는 가을에서 겨울로 갈수록 점점 색이 짙어진다. 짙은 갈대가 해풍에 물결치며 '사스락사스락' 거리는 소리에 흑두루미들이 하늘을 비상하며 '뚜루루' 소리로 화음을 맞추니 이것이 바로 '순천만 연가(戀歌)'가 아니던가.

 

순천만 국가정원은 문을 닫았지만 겨울이 성큼 오기 전의 깊어가는 가을날에 순천만 습지에서 갈대와 철새가 빚어내는 화려한 향연을 원없이 즐겨보면 어떨까.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3.11.17 10:15 수정 2023.11.1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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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