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

고석근

두 여자는 만가를 부르면서 시신이 누운 방을 여기저기 뒤적이고 다녔다. 찬장을 열어 조그만 숟가락 몇 개, 설탕, 커피 한 통, 루쿰(터키 과자) 한 상자를 찾았다. 레니오 할멈이 커피와 루쿰을 갖고 말라마테니아 할멈은 설탕과 숟가락을 차지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마라마테니아는 루쿰 두 개를 빼앗아 입에 처넣었다. 루쿰이 가득한 입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만가는 괴상하게 들렸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던 이웃 오르탕스 부인이 죽었는데, 다들 그녀의 유품을 차지하기 바쁘다.

 

‘두 여자는 만가를 부르면서 시신이 누운 방을 여기저기 뒤적이고 다녔다. (...) 숟가락 몇 개, 설탕, 커피 한 통, 루쿰(터키 과자) 한 상자를 찾았다. (...) 루쿰이 가득한 입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만가는 괴상하게 들렸다.’

 

어떻게 하여 사람이 이리도 뻔뻔하게 되었을까? 데이비드 시버리가 지은 ‘나는 뻔뻔하게 살기로 했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떤 사람은 괴물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무조건 고개를 숙이며 회피하는 사람을 배려심 깊고 선량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말한다. 

 

“진짜 미덕은 착함이 아니라 ‘착함을 달성하는 뻔뻔함’에 있다.” 

 

뻔뻔하게 된 사람들은 ‘착함을 달성하는 뻔뻔함’을 하지 않았기에 뻔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착함을 달성하는 뻔뻔함’을 실행 중이다. 참으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뻔뻔하게 살지 않기 위해! 올해 네 번이나 사람들에게 당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약속을 어겼다. 한 지인에게서 꼭 한번 보자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와서 나도 언제 어디서 보면 좋겠느냐고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문자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수개월이 지나 우연히 전철 안에서 만났다. 그는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헉!’ 나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내게 왜 문자도 없고 전화도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태연스레 말했다. 

 

“제가 조만간 연락 드리겠습니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 후의 세 사람도 이런 식이었다. 나는 그런 황당한 일을 겪으며 원칙을 세웠다. ‘복수하기!’, ‘그만큼만 되갚아 주기!’ 그만큼 화를 내기도 하고, 그만큼 나도 약속을 어기기도 했다.

 

소심한 복수를 하면서 마음이 쓰라렸다. 하지만, 대충 넘어가면, 나도 그렇게 뻔뻔스러워진다!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보면, 당한 만큼 복수를 한다. 왼쪽 어깨를 맞았으면 그만큼 세게 상대방의 왼쪽 어깨를 때린다.

 

인류의 오랜 지혜일 것이다. 만일 아이가 이렇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이의 깊은 무의식 속에 복수심이 똬리를 틀게 된다. 복수심은 점점 자라게 된다. 언젠가는 큰 공룡 같은 복수심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복수를 회피하게 되면, 이웃이 죽었는데도 뻔뻔하게 유품을 챙기게 된다. 약속을 어기고서도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복수하다 보면, 언젠가는 복수의 허망함을 깨닫게 되어 내 안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나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믿는다 ‘복수심이 사랑의 마음으로 화하는 기적을.’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 김경미, <엽서, 엽서> 부분 

 

 

사람은 사람으로 행복하고 사람으로 불행하다. 끝까지 사람이다. 뻔뻔하게 되어서라도 사람을 지켜야 한다. 내가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언젠가는 곁에 사람이 온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01.04 11:25 수정 2024.01.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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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