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웃음을 파는 기구한 운명, <명월관 아씨>

김석야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유차영

6.25전쟁 휴전이후 1955년경부터 1960년대 초반에 출생한 사람들을 베이비부머세대라고 한다. 2024년을 기준으로 고희(古稀) 고갯길에 걸친 황혼들이다. 이 시기는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서 드라마와 영화 주제가를 부른 가수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받던 시절이다.

 

그 시절의 가락에 매달린 곡조 중의 하나가 이미자의 목청을 넘어온 <명월관 아씨>다. 이 노래는 1967년 박종호 감독 영화 같은 제목의 주제곡이다. 이 영화는 김석야 원작을 신봉승이 각본으로 엮은 작품, 신성일·남정임·이순재·최남현·주선태 등이 출연하였고, 안양필름에서 제작했다.

 

여 주인공 남정임이 1966년 <유정>으로 데뷔하여, 이듬해 출연한 영화이며 복고풍의 신파 멜로영화였다. 스토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흥음식점, 기생집으로 통하던 명월관을 배경으로 기생 《매화》의 삶을 얽은 영화이다.

 

가야금 잡은 손은 시름 많아 떨리는가 / 기구한 운명이라 웃음을 팔며 사는 / 그 이름은 기생 매화 한숨은 묻어 놓고 / 눈물도 숨겨 두고 웃음 짓는 명월관 아씨 // 장고 채 잡은 손은 슬픔 겨워 떨리는가 / 한 많은 세상이라 웃음을 팔며 사는 / 그 이름은 기생 매화 푸념은 묻어 넣고 / 슬픔도 숨겨 두고 웃음 짓는 명월관 아씨.

 

영화의 스토리는 1940년대 일본의 망몽(亡夢) 태평양전쟁의 끄터머리에 매달린 사연이다. 서울(경성)거리가 일본의 승리를 축하하는 분위기로 들떠 있는 1941년 12월, 친일파인 중추원 참의(최남현)의 아들이자 보성전문학교의 학생인 이동호(신성일)는, 장안에서 소문난 《매화》(남정임)를 보기 위해 명월관에 갔다가, 독립운동을 하는 학생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시비 끝에 맞고 쓰러져 《매화》가 간호하게 된다.

 

동호의 아버지 이참의는 동호에게 일본인 참모장 다나까의 딸 아끼꼬와의 정략적 혼담을 언급하고, 동호는 단호히 거부한다. 또한 동호의 여동생 동숙은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동호의 친구 인걸(이순재)과 연인 사이다. 미야모도 총감의 정보고문이지만, 은밀하게 지하조직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현구(박암)는 동호를 처음 보고난 후, 그에게서 깊은 저항과 고뇌의 빛이 보인다면서, 이제는 행동으로 독립운동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동호 역시 부친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함께 하겠다고 다짐한다.

 

《매화》 또한 비록 기생이지만 부친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민족적인 절개를 지키고자 하며, 《매화》와 동호는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한편 독립운동을 하던 지하단체 청년들은, 총독부 고관들이 타고 갈 특별열차를 폭파하고 중국 대륙으로 망명할 거사를 계획하고, 현구는 아버지를 차마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고민하는 동호에게 아버지에게는 그 열차를 타지 않도록 말씀드리도록 한다. 뒤 이어 이들은 일본 고관들이 탄 열차를 폭파시키고, 상해로 망명한다.(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자료, 편집)

 

영화의 배경지 명월관(明月館)은 1909년경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 주임관으로 있으면서, 궁중요리를 하던 안순환(安淳煥)이 종로구에 개점한 조선요리집이다. 오늘날 세종로 139번지,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자리다. 2층 양옥집이었는데, 면적은 대지 1천2백 평에 건축면적 6백여 평이었다. 1층은 일반석, 2층은 귀빈석이었으며, 매실이라는 특실도 있었다.

 

1909년 대한제국의 공식기생제도인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궁중기녀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영업이 번창했다.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국군의 북진공격으로 북한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불을 지르고, 주인 이종구를 납북해 간다. 이들이 철사 줄로 꽁꽁 묶여서 끌려서 넘어간 고개가 단장의 미아리고개이다. 무려 8만7천여 명이 이렇게 북으로 갔다.

 

<명월관 아씨> 노래 속의 기생 《매화》는, 2층 특실인 매실(梅室)을 전담하던 기생이 아니었을까. 이 명월관에서 낸 인사동 분점이 바로 태화관(太華館)관이고,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참석하였고, 태화관의 마담은 주영옥이었다. 이때 파고다 공원에 나타나지 않은 민족대표를 대신하여 독립선언문을 낭송한 이가 정재용(1886~1976. 해주 출생)이다.

 

1918년 5월 24일 명월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안순환은 장춘관 주인 이종구에게 명월관 간판을 3만원을 받고 내주어, 돈의동 139번지(지금 피카디리극장)에 명월관 별관 간판을 걸게 하였다. 그리고 인사동 194번지에 위치한 순화궁(順和宮) 자리에 명월관 분점을 연 것이 태화관(太華館)이다.

 

이곳은 독립선언문낭독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되었고, 1921년경 안순환은 식도원이라는 요릿집을 새로 개점하였다. 명월관은 3.1운동 이후 우국지사들의 연락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명월관은 청풍명월(淸風明月)에서 따온 이름, 혹은 송도 기생 황진이의 기생이름 명월이에서 차운한 것으로, 그 당시 요릿집의 대표 브랜드다. 이곳에서 궁중요리를 일반인에게 판매하였고, 술은 궁중 나인 출신이 담가서 인기를 끌었단다. 처음에는 약주·소주 등을 팔았지만 나중에는 맥주와 정종 등 일본 술도 팔았다.

 

1910년대 명월관은 이색적인 광고도 하였다. 종로거리에 꽃 양산을 받쳐 든 기생행렬을 행진시킨 것이다. 나이든 기생(1·2·3번수 등)이 앞에 서고 어린 기생들이 뒤를 따르는 행렬은 구경꾼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앞서 가던 기생이 선창을 하면 뒤에 따르던 기생들이 화답하면서 명월관 선전을 했었다.

 

우산 끝에는 명월관에 꽃다운 기생 산홍(진주출신 유명한 기생)이가 새로 왔으니, 왕림해 달라는 방식의 종이수술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요릿집에서나 구경할 기생을 백주 대낮에 구경하게 된 횡재에 군중들은 이들 행렬을 뒤따랐고, 행렬이 종로에서 동대문 쪽으로 방향을 틀면 구경꾼도 방향을 틀었단다. 오늘날 인사동 어귀일 것이다.

 

이종구는 1937년 종로권번(鐘路券番)도 인수한 재력가였다. 명월관에서는 고유한 조선요리와 서양요리를 만들었고, 주요 손님들은 고위관료와 재력가·외국인 등이었다. 1932년 하루 매상이 500원, 종업원 수는 120여 명이나 되었다. 종업원은 손님을 안내하는 소년,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 인력거를 끄는 차부까지 포함한다. 이로 인하여 지방에도 명월관 이름을 내 건 요정(樂定)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식민지 시대의 멍든 궤적 자국이다.

 

명월이란 이름패에 매달린 끄나풀을 따라 역사의 갈피를 살피면, 임제(임백호. 1549~1587)가 되살아난다. 그는 1577년(선조 10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으나, 선비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다투는 것을 개탄하고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여생을 보냈다. 죽기 전에는 조선이 중국의 속국과 같은 형태로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아들들한테 곡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송도 기생 황진이를 사모했던 인물이다.

 

그가 죽은 황진이 묘소 앞에서 지은 시가 <명월관 아씨> 노래에 매달린다. ‘청조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이 시를 짓고 그는 파직을 당했다니, 선비의 풍류와 관료의 행실 금선(禁線)의 한계가 헷갈린다.

 

파직된 백호는 곧바로 평양으로 발길을 돌렸다. 평양기생 한우(寒雨)를 향해서다. 꿩(황진이) 대신 닭(한우)이었던가. 그녀의 거처 대문간에 백호가 당도할 무렵, 들에는 비가 오고 산에는 눈이 왔다. 이에 지필묵(紙筆墨)을 청하여 일필휘지로 시를 갈겼다. ‘북창이 맑다하여 우장 없이 나섰더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비가 오네/ 오늘은 찬비(寒雨)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 시를 펼쳐 읽은 한우는 즉시 한 편의 시를 휘갈겨 전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말 얼어 자리/ 비단 침 원앙침을 여기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지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고수 위에 상수가 있음이 세상사, 역시 이들은 서로를 알아차리는 감(感)이 있다. 그날 백호와 한우는 덩더쿵~ 어푸러졌으리라. 명월관의 매화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두루 겸한 대한제국기의 한량들처럼.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02.05 11:04 수정 2024.02.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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