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독서 예찬

홍영수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는 책을 읽다가 눈병을 얻고서도 수많은 독서를 했기에 그를 일러 책만 읽는 바보라는 의미의 ‘간서치看書痴’라 했다. 또한, 나비 그림을 많이 그렸던 화가 남계우는 지극한 나비 사랑으로 그를 ‘남나비’, 혹은 ‘남호접南胡蝶’이라 불리는 벽치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었다. 젊은 시절 필자는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의 이니셜을 가져와 ‘데칸쇼’와‘광졸치狂拙痴’등의 닉네임으로 만용을 부리며 스스로 독서 예찬론자가 되었다. 

 

​지금도 집에 있는 시간엔 어느 책이든 손이 가지 않으면 불안감이 든다. 정서적 불안이다. 관심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잠시 또는 오래전부터 눈길, 손길 닿지 않는 책장 한구석에 먼지 쌓인 책들을 일으켜 세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그리고 아포리즘으로 다가오는 경전과 시구에 시선이 멈추면서 ‘아하 체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활자라는 깊은 숲 사이를 가르며 비추는 한줄기 은빛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자는 흔들리는 영혼을 다잡는 마취제이고 타는 갈증을 적시는 청량제이다. 

 

그렇다면 우릴 수시로 독서라는 책갈피에 내가 갇혀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편히 누워서 나만의 날갯짓으로 미지의 세계를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절망이 앞서고 희망이 목덜미 잡히는 삶에서 문자와의 대화는 언제나 한 울림의 메아리로 울려온다. 그리고 어둡고, 얕고 얇은 지혜와 지식의 혈액에 산소가 되어주며, 활자들이 심장에서 쿵쾅거리면서 어리석음과 생무지의 글 밭을 갈아엎어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한다. 그래서 독서는 지혜의 알곡이고 영혼의 이삭이다. 

 

지금은 손안에 쥐고 있는 자그마한 기기를 통해 어느 분야든 접할 수 있다. 소설, 시, 수필, 만화 등등. 그 어떤 접근 방식이든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저 심연에 잠든 의식을 일깨우고, 의문의 화살표가 날아와 잠든 의식에 파장을 일으켜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그리고 글자와 문장의 노를 젓지 않을 때는 그저 바다는 고요한 호수와 같다. 이렇듯 사각지대에 편히 잠들고 있는 영혼의 바다에 큰바람을 일으켜 저 멀고 낯선 곳으로 항해의 뱃길을 떠나는 게 바로 독서이다. 

 

문학과 예술은 그 어떤 형태로든 미쳐야만 한다. 왜냐면, 예술이라는 심오하고 비밀스러운 문은 잠겨져 있어 태생적으로 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신비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수 없는 번호를 조합하던지, 미치도록 열쇠에 맞게 키를 갈고 닦아야 한다. 그것은 곧 자기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음표가, 한 점의 색상이 우리의 몽매한 혼을 깨우고 지친 영혼에 기를 불어넣어 주지만, 미칠 듯이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신비한 혼의 예술은 비밀의 문은 열어주지 않는다. 

독서는 위험한 생각을 품어 위험한 생각을 낳게 하는 출산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책을 만나 위험한 생각이 잉태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든 짧은 시간이든 집중하고 몰입해서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의 의미를 재해석해내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활자에 몰입한다는 것은 세찬 격랑의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한 노 젓기의 원동력이 된다. 그때는 깊고 오묘한 저자의 체험과 상상력, 사유의 심연에 밑줄 쫙~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행간 속 의미를 다잡고 반추하면서 다양한 빛으로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을 주워 모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메모해야 한다.

 

자주 책을 구입한 사람의 특징이 있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잊고 또, 사는 경우는 흔하고, 비싼 값을 지불하고 집에 와서는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거짓말(white lie), 그리고 고서점을 자주 다닌 사람은 책갈피에서 현금, 오래된 우표와 소유자의 오랜 흔적, 유명시인의 사인본과 사진(예전에는 저자 사인본은 값을 더 지불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등, 그리고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광경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분의 사인본 저서를 헌책방에서 마주쳤을 때이다. 

 

예전에 이런 졸부들은 나름 유명세를 탄 출판사에 부탁해서 출판물을 닥치는 대로 보내달라고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또한, 전집류 등은 읽지도 않고 전시품이나 되는 듯 책장에 진열해 놓은 경우가 흔히 있었는데, 한마디로 책이라는 종이에 내용과는 무관하게 잉크로 인쇄만 되면 통째로 구입했다. 특히 반짝거린 금박이의 책은 애장본이라며 서재에 전시용으로 진열해 놓은 사람도 많았다. 제발 가식의 가면은 벗어버리고 이러한 부류는 되지 말자. 

 

지금은 정신적, 이념적, 사상적 목발을 짚고 사는 시대이다. 한 모금의 양분을 마시고, 영혼의 힐링을 위해 그 어떤 분야든 벽치(癖痴)가 되어보자. 그래서 내 안에 움츠리고 잠들어 있는 또 다른 나를 일으켜 세우자.

 

 

독서의 노를 저어요

 

바다의 표면은 얕은 호흡으로 잔잔해요

내면의 수심엔 깨어나지 못한 의식이 고요하고요.

활자를 실은 낯선 배가 다가와

어제와 다른 풍랑의 그물을 가슴팍에 던져요

언어의 작살은

그물망 속 어둠과 무지의 심장을 꿰뚫고요

단어의 삿대는 파도를 떼미는 상징이 되어

얄따란 생각의 조직망을 밧줄로 얽혀줘요

문장의 뉘누리에 휩쓸린 

넋 잃은 생각과 행간의 의미는 

물머리를 헤쳐가며 항해하고요

마룻줄에 매달린 글자의 닻을 내리면 

사유의 파편들이 해저를 자맥질하다 떠올라요

지적 갈망이 이물과 고물에 해일처럼 밀려올 때는

망망대해로 독서의 노를 저어가요

돛을 높이 올리고 해적선의 수부가 되어 

활자의 그물에 걸린 사유의 보물들을 노략질하고요

저자와 독자의 두 물굽이에서는

설익은 항해일지에 밑줄그으며

난반사로 비추는 물음표의 빛살을 잡아당겨

의문의 해수면에 느낌표로 적바림한답니다

 

 _ 졸시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4.02.26 11:37 수정 2024.02.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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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