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어느 지인의 1980년대의 회상 – 눈물 젖은 김밥

김태식

정 기관장은 감방에 누워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콘크리트 벽과 굳게 닫힌 철문 두 달 남짓 신혼생활 동안 신혼의 단꿈조차 만끽하지 못한 아내는 첫 아이를 가졌고 그해 1월에 출산했다. 출산을 지켜 주어야 할 남편은 아프리카의 감방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고 아비의 부재중에 태어난 아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걱정에 이르자 눈에는 굵은 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팔베개는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어머니와 형제들은 얼마나 걱정을 할까. 이번 조업기간을 마치고 나면 공무감독으로 육상근무를 기대하고 있었다. 아울러 가족과 함께 해외에 파견되어 주재원으로 새로운 생활을 할 것이라는 부푼 꿈이 감방의 어둠 속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한편 회사에서는 이미 배가 압류되어 버렸기에 모리타니 당국에서 요구하는 벌금을 낼 수 있는 재정은 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당국의 처분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선원들도 모리타니 당국자들도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지켜볼 뿐이었다. 모두 대안이 없는 답답한 현실 앞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감방에는 비슷한 죄목으로 포르투갈 새우트롤선원들도 나포되어 함께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쪽 영사 부부는 한 달 동안 시내 호텔에서 상주하며 선원들의 빠른 석방을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들은 15일 만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달랐다. 우리 측에도 모리타니 수도 누아쵸트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대사관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인이 외국에서 범죄자로 체류한다는 것이 얼마나 서럽고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정을 뼈저리게 느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각기 따로 수감되어 있었고 철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선원들의 감방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늘 개방되어 있었다.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정보 공유도 안 되니 전 선원들을 합치면 좋겠다는 의견을 간수에게 건의했더니 받아들여졌고 한 방에 모두 수감되었다.

 

전 선원들은 합방을 한 이후에는 서로를 의지하며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이 되었고 돌아가며 노래도 한 곡씩 부르고 끝말잇기 등으로 억압된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전 선원들은 처자식과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불사르고 있었다. 

 

어떤 날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죄수들을 감시하며 일렬로 늘어세워 물을 길러 가는 날이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도 오아시스가 있고 제법 큰 건물도 있었는데 2리터 들이 페트병을 구해 한 통의 물을 가져온다. 그 물로 양치질을 하고 그다음 머리에 물을 끼얹어 비누질한 다음 흘러내리는 비눗물로 온몸을 문지른 후 물을 부으면 목욕은 끝난다.

 

수감생활이 장기화 되고 있던 어느 날 현지에서 수산물 유통사업을 하는 교민 몇 분이 찾아오셨다. 교민이라고 해야 세 가구 정도 있었는데 그분들이 정 기관장과 선장 그리고 전 선원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면회를 왔던 것이다. 그분들이 수감되어 있는 일행들에게 건넨 음식은 32명이 넉넉하게 먹고도 남을 정도의 김밥이었다. 마치 고향 소식을 가져온 듯했다. 

 

교민들이 꺼내 놓은 김밥을 먹겠다는 생각보다 울컥하는 마음에 김밥을 바로 집어 먹을 수가 없었다. 대야에 담긴 김밥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교민들의 뜨거운 동포애와 한국음식에 대한 반가움과 나아가 처자식 생각 그리고 고향 생각에 김밥은 어느새‘눈물 젖은 김밥’이 되고 말았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3.05 10:24 수정 2024.03.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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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