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진 칼럼] 묵은 옷을 꺼내 입다

허정진

외출하려고 옷방을 들어선다. 방은 작아도 벽면마다 옷들로 가득하다. 옷걸이에도, 바닥에도 우북수북 쌓여있다. 선글라스며, 지갑이며, 벨트며, 손가방 같은 액세서리도 많다. 이사할 때 짐 옮기는 사람의 말이, 남자 한 사람 옷이 자기 집 식구 전체보다도 많다고 의아해한 적도 있다. 특이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남들보다 좀 많기는 한 것 같다.

 

특별히 패션에 관심이 있거나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수더분하고 단정한 취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까워서 보관하고, 혹시나 해서 버리지 못한 결과다. 작아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다시 살 빠지는 날을 기약하고, 오래된 스타일은 유행이 다시 돌아올 것 같고, 조금 낡거나 헤진 것은 후일에 농사일할 때 입는다며 깜냥껏 계획을 세워둔 탓이다. 사연도 무시 못 한다. 딸이나 아들이 사준 옷이고, 생일이나 명절 때 빔이고, 비싼 돈 들인 명품이고, 여행이나 기념으로 구매한 옷이니 함부로 연을 끊기도 망설여진다. 

 

꼭 휴대전화 연락처에 적힌 인명부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언제 만났는지,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심지어 십 년이 넘는 세월에도 문자든 전화든 연락 한 번 주고받은 적이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쉽사리 지워버리지 못한다. 예전처럼 연말에 새 수첩에 옮겨적는 수고로움이 없다는 문명의 편리함도 한몫한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대학에 다닐 때였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고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계절마다 한두 벌 외출복이 전부였던 것 같다. 유행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고 옷이 찢어지거나 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ROTC 후보생으로 단복만 입어야 했던 2년 과정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편하고 자유스러웠다. 그런데 같은 과의 여학생 한 명이 매일 다른 옷을 입고 학교를 나왔다. 집이 부자인가 보다 이전에 옷의 디자인이나 색감, 재질 등이 저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내일은 또 어떤 옷을 입고 자신을 드러낼지, 그 하루내 옷방도 이제 계절별로, 기능별로, 형태별로 많은 옷이 준비되어 있다. 저 옷을 하루씩 돌려가며 입어도 그 여학생처럼 날마다 새롭다는 기분이 들 텐데 실상 결과는 그렇지 않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근사한 옷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어제고 오늘이고 자주 입는 옷에만 손이 간다. 자주 입어 몸에 익고, 남들 시선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익숙함에 편한 옷을 고르고 만다. 두툼한 외투만 해도 스무 개 남짓인데 입는 것은 한두 벌로 긴 겨울을 난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연락처에 등재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정작 만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다. 젊었을 때는 인맥이 재산이라는 이유로 술친구, 동네 친구 가릴 것 없이 의리를 앞세워 부지기수로 사귀었지만 이제는 눈앞에 있는 사람만 겨우 챙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소통과 공감도 없이 흥만 가지고 너나들이하는 친구보다 나와 말이 통하고 나한테 잘해주는 이웃에게 아무래도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그런 사람이 편하고, 편한 사람이 좋은 사람의 기준이 된 모양이다. 

 

아무리 옷을 끌어안고 산다고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햇빛에 색이 바래거나 곰팡이가 슬어 썩힐 수도 있다. 옷들에도 거풍이 필요하다. 날씨 좋은 날은 창문을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하고, 오래 묵은 옷은 열 일 없이 세탁도 한다. 먼지나 직사광을 피해 옷보도 씌우고, 구석진 곳에 습기 제거제도 놓고, 옷이 눌러지지 않도록 서로 자리를 바꿔놓기도 한다. 옷이 상하지 않게 잘 보관만 하면, 휴대전화의 연락처도 지우지만 않는다면 서로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곳에는 온기가 없다. 아무리 깨끗하고 온전하게 보관했다고 해도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들은 차갑고 눅눅하기만 하다. 쉰내를 없애려 향수를 뿌려보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이 피어나듯이 입지 않은 옷은 그저 피륙이고 껍데기일 뿐이다. 전화번호만 존재하고 서로에게 아무 감정과 의식도 없는 지인은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오래된 물건들과 마찬가지다. 

 

온기보다 좋은 향기가 있을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무너지듯이 온기가 있어야 만물이 생명력을 얻는다. 서로 체온을 나누고 같이 호흡할 때 옷도, 사람도 비로소 살아 숨 쉬게 된다. 묵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방안도 따뜻해지고, 메마른 땅에 한바탕 빗줄기가 있어서 마른 풀들이 생기를 얻는 법이다. 옷도 사람 몸에 걸쳐서 누군가의 등짝을 따뜻하게 할 때 비로소 그 존재가 빛난다. 

 

묵은 옷을 꺼내 입어본다. 분명 예전에 입었던 옷인데도 왠지 어색한 기분에 다시 길들이기가 마땅찮다. 옷이 많은 것보다 잘 입는 게 중요했던 모양이다. 사람도 자주 만나는 사람이 허물없듯이 아무래도 자주 입는 옷이 그만큼 몸에 편했던 것 같다. 평소에 서운하거나 소원함이 없이 온기를 유지했더라면 연락처에 남아있는 오래된 이름들이 그렇게 낯설고 불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계면쩍고 남부끄러웠던 사연도 있고, 지우고 싶어도 지우지 못하는 이름도 있다.

 

옷에 흠집도 보인다. 지워지지 않는 자국도 있고, 곁불이 튀었는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구멍도 있다. 살아온 흔적이고 상처다.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지나온 연(緣)과 환(幻)도 이제 마음속에 접어둘 때인 것 같다.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볼 일이다. 시간의 갈피 속에 저장만 해둔다고 온기가 유지되는 것은 아닐 터, 서로 응어리진 속울음이라도 시원하게 토해볼 일이다.

 

삶을 정리하듯 언젠가는 옷 정리를 해야 할 게다. 나이가 들어 주변의 사람들도 싫든 좋든 떠나보내듯 나에게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은 옷은 내보내야 할 일이다. 저승길에 가져갈 것도 아니고, 사후 유품 관리사가 쓰레기 치우듯 처분하는 것도 못마땅한 일이다. 사니까 살아지듯이, 비워야 가벼워질 일이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4.03.26 04:50 수정 2024.03.2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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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