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깊은 밤 숨은그림찾기

민은숙

유비무환은 돌발 변수에 강한 힘을 발휘한다. 반 시간이면 넉넉한 역에 혹시나 하여 복사한 양만큼 앞선 시각에 출발한다. 생각지도 않은 화장품 엑스포가 진행 중일 줄이야. 주차 공간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역내에서 좀 떨어진 시골길을 지나 JJ부동산 앞에 차를 세운다. 망막에 위치를 공들여 각인하고 역으로 향한다.

 

공모전에 무작정 도전장을 내밀었다. 칼럼이란 글자로 언어로 귀에 익도록 보고 들었다. 막상 써보려고 하니 개지 한가운데서 호미 한 자루 들고 선 것처럼 막막하다. 먼저 정의부터 짚어보고자 한다. 인문학이란 광야에서 파종하려면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짧지만 깊은 고민 끝에 씨앗 두 종류를 골랐다. 하나는 그나마 익숙한 심리학에 관계를 덧댄 상호작용이다. 나머지는 요즘 심취하고 있는 몰입이다. 넓게 뿌리기에는 나의 협소한 저장고란 한계가 있다. 알찬 북주기로 잘 키워 선보이리라.

 

가는 날이 장날이다. 미리 시뮬레이션한 버스를 기다린다.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 중이라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섬뜩 스친다. 손을 명치에 얹고 긍정으로 다스린다. 예정에 없던 지하철을 탔다. 모녀로 보이는 어머니는 내 목적지가 궁금하시다. 세종문화회관은 종각이 더 빠르다면서 근방까지 날 챙긴다. 줄었던 미간이 늘어나며 긴장이 풀린다. 따스한 말 한 조각이나마 나도 누군가의 구김을 펴는 데 일조하리라.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예정된 당선자 발표일인 금요일이다. 예정된 공지는 감감무소식이다. 칼럼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강했으나 미흡하다는 걸 안다. 어떤 사람들이 당선되는 걸까. 대표전화로 질의했다. 국내는 물로 해외에서도 응모자가 많아 심사가 늦어졌다고 한다. 간절하면 이루어지리라. 늦어진 공지에 내 이름이 앞머리에 떠 있다.

 

불길한 예감은 왜 적중하는 것일까. 돌아오는 길은 더듬지 않고 제대로 향할 수 있었다. 즐거웠던 시상식으로 이완된 근육이 비몽사몽간에 당도한 역이다.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없던 기운이 솟아난다. 애마를 찾아간 나는 햄스터 쳇바퀴 돌듯 밤을 헤맸다. 등이 축축하도록 걸었건만 원점이다. 망막을 추종하는 감성 때문에 이성이 속울음만 씹는다. 밤에 들뜬 엉뚱한 길은 버틴 기력을 후들거리게 한다. 풀린 시계태엽을 대체 몇 회나 되감은 걸까. 계맹의 낮과 밤의 차는 예상치보다 컸다. 만오천 보가 머리에 쥐 나도록 깨닫게 한다. 그간 보이는 부분만으로 얼마나 편협하거나 조급하게 행동했던 것일까. 그랬다. 뜨물 같은 한밤 이면이 대기하는 줄도 몰랐다.보고자 하나 볼 수 없다는 도덕경 문구는 후렴이 된다. 깊은 밤에 걷기 한번 제대로 한다.

 

시골길은 순박하지만은 않다. 의외로 통이 크다. 빛은 물론 상식까지도 통째로 삼킨다. 새벽이 가까워지는 야심한 밤, 꼬박 하루 삼만 보에 절인 몸이 탈진할 것만 같다. 부츠는 피곤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을 감행한다. 역에서 본 비니 쓴 배낭을 불러 세운다.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남자는 트럭을 안내한다. 찰나가 이렇게도 긴 시간이었던가. 억측과 어두운 상상이 꼬리를 문다. 뒤늦은 겁대가리가 올라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그를 뒤따르는 손가락이 떨며 자판을 두드린다. '이 차량번호 잊지 마. 한 시간 내 나한테 연락 없으면 신고해. 나 지금 트럭 타' 오늘 일정을 아는 친구에게 다급히 보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이다.

 

바짝 졸았던 가슴이 별안간 펴지면서 벅차오른다. 그토록 찾았던 눈에 익은 부동산이 보인다. 익숙하다는 게 이렇게나 가슴 떨리는 거였구나. 늘 곁을 지켜 고마움을 몰라준 것이 낯부끄럽다. 남자는 차 가까이 내려 주겠다며 좀 더 가자고 한다. 혼자서 범죄 영화를 찍었던 나는 스스로가 찔러서 전광석화로 인사하며 하차했다. 익숙한 애마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잠근다. 친근감이 투여한 진정제가 뜨물을 걷어낸다. 후우, 날숨이 빠져나오자 심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들숨이 참 길었다.

 

날 세웠던 어깨가 내려온다. 집으로 오는 여정이 이렇게나 길 줄이야. 그 남자에게 뒤늦은 미안한 감정이 쫓아온다. 손 내밀고는 덜컥 가슴이 철렁한 건 아는 것이 병이다. 증세가 잦아들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아직 살만한 인심이 뭉클하게 고맙다. 생의 가장자리 테두리에서는 작은 선심이 큰 고단함을 날려준다. 음 지의 반대편 양지를 본다. 이 세상은 혼자만으로 살 수 없음을 통감한다.

 

깨진 달빛 부스러기에 쿨럭이며 주저앉을 때마다 날 일으켜준 자장이 있음을 오감으로 안다. 내게 드리워진 애정과 그늘이 있다. 보이지 않는 등 뒤에서 밀어주는 응원과 격려로 나는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코스미안상 수상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당선

환경문학대상
직지 콘텐츠 수상 등

시산맥 웹진 운영위원
한국수필가협회원
예술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sylvie70@naver.com

작성 2024.04.17 02:11 수정 2024.04.17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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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