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전하여 받은 등불, 배움

임이로

최근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 중이다. 학과 특성상 컴퓨터와 인공지능 및 기타 IT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오랜만에 배움터로 온 첫 소감은 교육방식이 급격하고 변하고 있다는 격세지감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익숙해진 화상채팅 환경, 교육자보다 더 넓고 빠르게 지식과 정보를 설파하는 유튜브 및 SNS, 그리고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교육 등, 내가 생업에 종사하는 동안 미래 세상을 준비하는 학문의 장은 그렇게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나무처럼,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급변하는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칠판을 쓰는 것보다 모니터 공유 화면을 보는 것이 익숙하고, 종이에 필기하는 것보다 노트북이나 전자 패드에 각자 기록하는 일이 익숙하다. 때론 수업을 운영하는 교육자보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선수지식을 겸비하기도 하고, 직접 도서관을 찾는 것보다 빠르고 쉽게 전자책 서비스로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온라인 속 흥미로운 정보가 넘치다 보니 사람들과 소통할 때도 말할 거리, 볼거리가 넘친다. 

 

혹자는 이러다 정말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모든 곳에 정보로 넘쳐나도, 막상 직접 가보니 학교는 여전히 배움의 기쁨과 사람들이 만나는 광장으로 활기가 넘쳐났다. 이 모습을 보고 나는 '고대 아테네 학당'의 모습을 떠올린다.

 

각자 다른 세계에 살던 학생들이 만나 학제적 교류를 하고, 세상사를 나누며 새로운 생각과 배움이 꿈틀대는 공간. 

 

본디 학교는 같이 배우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오랜 시간 수직적이고 맹목적인 교육시스템에 익숙해, 교육의 본질을 잊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에 격식과 규칙이 선행되는 비교적 경직된 연대를 이뤄온 우리 공동체는, 충분히 발전해 어느덧 서로 느슨하게 이어지되 끈끈하게 이어지는, ‘느슨한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 현장도 수평적이고 넓어지고 있다. 서로 묻고 답했던 고대 그리스 학당과 아고라(Ágora)의 현장처럼.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1509-1510, 출처: 위키

 

한편,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불교 문화엔 ‘전등식(傳燈式)’이라는 오랜 전통이 있다. 스승으로부터 법맥(法脈)을 이어받는 의식을 뜻하며, 스승의 가르침이 제자의 배움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마치 ‘등불에서 등불로 전하는 것’과 같다 하여 만들어진 관습이다. 

 

등불은 다른 이에게 전한다고 하여도 내 등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오히려 더 많은 불빛으로 이 세상은 밝아진다. 교육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왜 여전히 배움의 터로 나서는 걸까. 세상은 여전히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이 암흑처럼 어려운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나만의 등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싶단 희망,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랑,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의(Justice)를 마음에 새기고 싶은 본능. 즉, 배움의 본질이다.

 

봄학기에 들어, 새로 배운 게 있다.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인공지능이 제일 어려워하는 건, ‘데이터 만들기’라는 사실. 데이터를 가지고 세련되게 가공하는 능력은 비상할지언정,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는 일에 인공지능은 굉장히 무력하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정보와 지식은 인고의 시간을 지나,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사고와 통찰이 만들어낸 반짝반짝 빛나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이는 엄연히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다. 형식과 방법이 바뀌었을 뿐, 이러한 집단 지성을 통해 여전히 우리는 사람에게서 온 지식을 배우고, 사람을 가르친다. 아무리 첨단기술이 발달하고 정보 수집처가 다양해도, 이 지구는 인간이 만든 정보이자 세계인 것이다.

 

인류가 기억하는 위대한 스승은 모두 학생들과 함께 배우는 자들이었다. 세 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스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그 모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요즘 세태 아닐까. 학생들은 스스로 배우며 스승도 그저 함께 배우는, 과거 아테네 학당의 모습처럼 말이다. 학교라는 공공의 마당은 그렇게 새로운 계절로 가는 옷을 갈아입고 있다. 

 

오늘도 학교는 세상을 밝힐 등불들로, 그 열정과 희망으로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임이로]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4.04.26 11:39 수정 2024.04.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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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