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진 칼럼] 내 ID는 ‘까시남’

허정진

까시남. ‘까칠한 시골 남자’란 뜻이다. 남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고, 나도 남들 앞에 스스럼없이 인정한다. 늙어서도 아니고, 시골이어서도 아니다. 젊어서 도시에 살 때도 원래 까칠한 성격이었다. 

 

매너나 에티켓, 몰상식하거나 경우 없는 꼴을 못 본다. 교통 규칙이나 사회적 약속과 규범 위반, 환경 훼손 등 혼자만의 이기적인 행위에 쌍심지를 켜고 참견한다. 대화할 때 잘못된 용어나 문법적 오류도 말꼬리를 잡고 쉽게 넘어가지를 못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라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 일, 남의 일 상관없이 시시비비를 따지려 든다. 

 

따지고 보면 잘못은 없다. 공공질서를 지키자는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데 오히려 박수받아야 할 일 아니냐고 스스로 반문한다. 비록 시민 영웅이나 희생적인 봉사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의 일에 나 몰라라 하는 세상에 때로는 돈키호테 같은 의협심도 필요한 것 아니냐고 혼자 성토한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나를 불편해한다. 좀 너그럽고 만만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매사에 따지고 들고 까다롭게 구니까 항상 긴장된 분위기를 만든다고 탓한다. 식구들도 걱정한다. 내 일도 아닌데 요령 없이 뭐 하러 남 일에 신경 쓰냐고 꾸짖는다. 나이도 있는데 함부로 나서다가 엉뚱한 해나 입지 않을까 염려한다.

 

모르는 체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 ‘느긋하게 살자!’ 마음속에 다짐하고서도 하루 이틀 지나면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이 너무 남을 의식해서 원칙대로 행동하다 보니 상대적인 보상 심리에서 나오는 것일까? 힘들고 외로운 세상 견뎌내느라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자존감 결핍 같은 것이라고 있는 것일까? 하우불이(下愚不移)라고,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그럴수록 내가 타인에게 불신의 마음과 화풀이식 행동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호불호의 경계, 한번 상한 자존심은 쉽게 풀리지 않는 극과 극의 방정식으로 세상을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내 방식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만, 유유상종을 내세우며 내 코드와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거리를 두려고만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오직 감독자의 관점에서 평가하려고 대드니까 모든 것이 미흡하고 불만스럽게만 보이는 것 같다.

 

의리와 정의를 내세우지만 어쩌면 나로 인해 무안하고 당황하거나,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공정이나 불평등 같은 거대 담론도 아니고 그저 모범적인 시민의식 문제를 두고 그걸 이 시대만의 절대적 과제인 양 심한 거부감을 드러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어쩌면 불공정해 보이는 세상 모든 일이 그것도 사람 살아가는 방법이고 먹고사는 과정이 아닌가도 싶다. 자연에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사람 또한 이런저런 모습들이 어울려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성진 스님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나 자신’이라고 했다. 남에 대한 평가나 공공질서 의식은 투철했지만 정작 나에 대해서는 까칠한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남의 실수에 대해 이해와 관용으로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 타박에 앞서 칭찬이나 미담이 먼저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세상에 대해 호의적으로는 아니어도 선하게는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삶을 가볍게 하는 대신 구들장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무장해야겠다. 까칠해서 부담스러운 것보다는, 사람이 따뜻해서‘따시남’소리를 듣고 산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4.05.07 10:44 수정 2024.05.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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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