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변신

고석근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김수인 감독의 영화 ‘독친’을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독이 되는 부모’라니 얼마나 참담한가! 딸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엄마 혜영, 언제나 그녀는 다정하고 우아하다. 엄마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딸 유리, 그녀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다.

 

누가 봐도 완벽한 모녀, 어느 날 딸 유리가 주검으로 발견된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끔찍한 진실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유리는 독인 엄마를 견딜 수 없어 자살했던 것이다. 유리는 자살하기 직전에 담담하게 말한다.

 

“엄마의 엄마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엄마에게 딸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유리는 숨 막히는 삶을 견딜 수 없어 ‘자살자’로 변신했다. 삼라만상의 이치는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게 되면 통하게 된다.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는 영업사원 고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신한다. 하지만 벌레로 변신한 인간이 잘살아 갈 수 있을까? 가족들은 그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그는 다시 변신해야 했다. 주검으로. 죽어서야 그는 이 세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다른 길은 없었을까? 우리의 전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집을 탈출해 해와 달로 변신한 멋진 남매를 보여준다.

 

어느 날 호랑이가 되어 나타난 엄마. 어린 남매는 어떻게 해야 할까? 효를 다해 엄마의 먹잇감이 되어야 할까? 싱클레어는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된다.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모든 영웅 신화, 전래 동화는 아이가 집을 떠나는 이야기다. 백설 공주, 심청전, 바리공주....... 집을 떠나지 않으면 계속 아이로 머물게 된다. 그런데, 유리는 왜 집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죽어서도 엄마의 엄마가 되려 했을까?

 

집을 떠난 자신을 상상했더라면, 너무나 많은 길이 그녀의 앞에 가로 놓여 있었을 것이다. 잠자는 왜 집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며 벌레인 자신을 즐겼으면서.

 

‘생각하는 벌레’는 자연 속에서도 잘살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이 그의 상상력을 가로막았을까? 인간의 근원적인 감옥은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모든 성현은 출가했을 것이다. 집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출가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독립된 인간이 되는 것. 가정을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로 변신시키는 것. 

 

아이들은 쉽게 변신한다. 바람을 만나면 바람이 되어 함께 날아간다. 나무 아래에 서면 나무가 되어 땅속으로 발을 뻗는다. 우리는 아이의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 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월요일 식당 바닥을 청소하며

 불빛이 희망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

 믿지 않기로 했다 어젯밤

 형광등에 몰려들던 날벌레들이

 오늘 탁자에, 바닥에 누워 있지 않은가

 제 날개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속이 까맣게 그을리는 줄도 모르고

 불빛으로 뛰어들던 왜소한 몸들,

 신문에는 복권의 벼락을 기다리던

 사내의 자살 기사가 실렸다.

 

 - 길상호, <희망에 부딪혀 죽다> 부분  

 

 

희망(希望)은 ‘욕망(望)을 따라가는(希) 것’이라고 한다.

‘불빛으로 뛰어들던 왜소한 몸들’ 그들은 욕망이 이끄는 곳으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너무나 커다란 집을 짓고 사는 인간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욕망은 너무나 커져, 희망에 부딪혀 죽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05.09 11:02 수정 2024.05.0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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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