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흥렬 칼럼] 지구가 인간에게

곽흥렬

너희들은 그동안 많이 행복에 겨워했겠지. 그것이 정작 진정한 행복이랄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앞으로 두고 보면 알 일이겠지마는. 

 

덕분에 나는 여태껏 불평 한마디 못 내뱉고 끙끙 속앓이만 해 왔다. 너희들 욕망의 덩어리인 높고 낮고 크고 작은 수많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꼭 내 전신全身에다 한 군데도 성한 곳 없이 빽빽이 꽂아 둔 길고 짧은 침처럼 나를 못 견디게 만드는구나. 너희들이 생활하면서 뿜어내는 온갖 독가스로, 나는 지금 숨쉬기조차 버거워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런 사실을 너희들은 눈곱만치라도 알기나 하느냐.

 

용서가 최대의 미덕이라는 사실을 믿기에 나는 지금껏 꾹 참고서 살아왔다. 한데, 보자 보자 하니 글쎄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란 존재는 한번 화가 났다 하면 그때선 감당이 불감당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유념해 주었으면 좋겠어. 

 

요 근래에 이미 여러 차례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센스가 형광등인지 도무지 알아차려 먹지를 못하는 듯싶구나. 참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존재들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도리어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만 할까. 

 

너희 인간들은 덕지덕지한 욕망을 어찌 그리도 많이 지닌 족속이냐. 세상에 너희들만큼 지독한 탐욕쟁이는 내 이날 이때까지 보질 못했다. 분에 넘치는 그 썩어빠질 욕망 때문에 나를 비롯한 다른 선량한 종족들이 얼마나 상처 입고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너희들은 단 한 번이라도 곰곰이 헤아려 본 적이 있느냐. 

 

좀 심한 표현인 줄은 모르겠다만, 내가 판단하기에 너희들은 이 세상의 악성종양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너희가 바로 그 장본인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너희들만 없으면 나는 다른 종족들과 어울려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이 그래선 못쓴다. 나의 분별없는 행위가 남에게 미칠 파장도 한번쯤은 생각을 해 봐야지. 할아비의 선업善業이 손자 삶의 거름이라고 한 너희 조상의 가르침을 너희는 왜 기억을 못 하느냐. 너희들이 뿌린 씨앗이 결국은 너희 손자 대에 가서 틀림없이 업으로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너희는 너희 자식에겐 그처럼 끔찍이 위하는 척하면서, 장차 이 세상을 짊어질 후손들한테는 어찌 그리도 무관심하냐. 그런 걸 보면 너희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지독한 근시임에 틀림이 없어. 

 

충고의 말은 귀에 거슬린다고, 내 욕먹을 줄을 번연히 알지만 그래도 쓴소리 한마디 던지고 싶다. 제발 좀 저 멀리를 내다보고 살려무나.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오늘을 아무렇게나 행위 하는 것보다 무책임한 태도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오늘이라도 조신하지 않고 계속 이런 식으로 처신한다면,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마. 내가 이미 수십, 수백 차례에 걸쳐 보낸 경고의 메시지를 어느 집 개가 짖느냐며 깡그리 묵살해 버리는 너희들을 두고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그래, 듣기 좋게 ‘용감’이라고 해 두자. 그렇담,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너희들은 어찌 그리도 무식한지 모르겠구나. 이때의 용감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라고 하는 거다. 이 만용만큼 위험천만한 태도도 없지. 만용의 결과는 필시 비극으로 귀결되니 말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지 않더냐. 

 

자는 범 코침 주는 무모한 행위일랑, 때늦은 감은 들지만 지금부터라도 제발 삼가 주었으면 한다. 이것이 너희도 살고 나도 살고 그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 아니겠느냐. 내 지구가 너희 인간에게 던지는 마지막 충고이니 부디 새겨듣길 바란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05.23 09:40 수정 2024.05.2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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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