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시간 (108)
바람은 부드럽게 불어오고
햇살은 따스하게 온 누리에 퍼지며
오늘도 무심하게 아침을 깨운다네
아,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이야.
저 너머로 가기에 딱 좋은 날이라네
고백하건대 최악인 동시에 최고인 세상이었네
때론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지기도 했고
때론 미칠 것 같은 고통에게 반항하기도 했지
전쟁 통에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고
아이가 태어난 그해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혁명이 일어나 그 소용돌이에 갇히기도 했어
그렇다고 인생에 고통만 있었던 건 아니야
눈이 그치면 꽃이 피고 꽃이 지면 단풍이 들듯
누군가 떠나가면 또 누군가가 와 즐거웠지
이제 백 순을 넘기고도 팔 년이 지났으니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근 것과 같다네
마지막 삶 속에서 신뢰할 만한 위안은
존재를 엮는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버리고
저 숲으로 가 모든 감각이 끊어질 때까지
자연에게 온전히 몸을 맡겨 놓는 일이라네
순명한 순리자 ‘도명’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늙은 몸을 이끌고 자작나무 숲으로 걸어갔다. 가느다란 실처럼 겨우 붙어 있는 생이 뒷걸음치며 도명에게서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도명은 육신이 이 숲에서 스스로 사위어 가는 동안 호기심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불행한 짐승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 생각조차 버리려고 했지만,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약한 생의 그림자에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도명은 숲을 지나 골짜기 사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백우동굴에 도착했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