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유물

이순영

존재하는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 못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또다시 오네

오고 또 오는 것은 시작 없는 데로부터 오는 것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로부터 왔는가

 

존재하는 만물은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다 돌아가지 못하니

다 돌아갔는가 하고 보면 아직 다 돌아가지 않네.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끝까지 해도 돌아감은 끝나지 않는 것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돌아갈 건가

 

세상은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편견과 멸시와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갇혀 살지만, 간혹 강호의 고수로 남아 세상을 평정해 버리곤 한다. 그들은 이른바 비주류의 사람들이다. 주류에 들어야 성공하고 주류가 돼야 조직이나 집단 안에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공무원이 된다든지 삼성이나 현대 같은 큰 회사의 일원이 되어야 명함을 들이밀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다. 소속감 없이 비주류로 살면 왕따가 되거나 오타쿠가 되어 겉돌게 된다. 인생은 ‘독고다이’라고 자조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자발적 ‘독고다이’인 화담 서경덕을 나는 좋아했다. 그의 사상에 심취해 젊은 날을 보냈다. 조선에서 비주류로 살다 간 강호의 고수인 서경덕을 중학교에 막 들어갈 무렵에 만났다. 아버지 책장에 꽂혀 있던 서경덕의 책을 겁도 없이 빼어 들고 뜻도 모른 채 그냥 읽어 내려갔다. 한문과 한글이 섞여 있어서 열네 살쯤의 소녀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는데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나는 화담을 만나면서 어른이 되어갔다. 끌림이란 이런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가가는 것, 그 끌림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서경덕에게 푹 빠졌다.

 

사람들은 화담 서경덕을 논할 때 제일 먼저 황진이를 떠올린다. 물론 황진이와의 로맨스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엔 아주 좋은 이야깃거리이긴 한다. 절세미인 황진이가 대제학을 지냈던 소세양을 유혹해 성공했고 십 년 면벽의 내공을 지닌 지족선사도 유혹해서 성공한 뒤 마지막으로 화담 서경덕을 목표로 삼았으나 이미 공부를 완성해 대인의 경지에 든 서경덕은 끝내 유혹하지 못했다. 우주의 원리를 연구하고 인성의 본질을 깨달으며 인간의 참된 삶이 무엇인지 성리학의 정점에 서 있던 서경덕이기에 황진이는 애인이 아니라 제자가 되어 그때부터 기생 신분으로 ‘우주의 원리를 깨달은 도인’이 된다.

 

‘궁리’는 서경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궁리는 선불교의 ‘화두’와 비슷하다. 서경덕은 어릴 때부터 궁금증이 일어나면 그 이치를 다 알 때까지 이리저리 따져보고 깊이 연구해서 궁금증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지녔다. 집이 가난해서 어머니가 나물을 뜯어오라고 내보내면 빈 바구니만 가지고 들어왔다고 한다. 들판에 나가보니 종달새가 날고 있는데 그제는 1치쯤 날아오르더니 어제는 2치쯤 날아오르고 오늘은 3치쯤 날아올라 왜 그런가 그 이치를 생각하느라 나물 캘 생각도 잊은 채 궁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서경덕은 서당에서 겨우 한문을 깨우칠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서경덕의 독학 방법은 벽에 한자를 써서 붙여 놓고 그 한자와 세상과의 관계를 궁리했다고 한다. 그렇게 스승 없이 공부하고 깨달았는데 책과 자연이 서경덕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계보를 중요하게 여긴 조선의 학계인 성리학자들 중에 정말 독특하게 스승이 없는 진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학자였다. 젊은 시절에 지나친 학문 연구와 독서와 사색으로 과로가 겹쳐 몸이 상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전국 명산을 여행하며 몸과 마음을 회복한 뒤 다시 돌아와 개성 오관산에 화담 학당을 세우고 학문 연구와 교육에 매진했다. 

 

서경덕은 그의 시 ‘유물’은 생명의 바탕에 관해 읊고 있다. ‘만물은 오고 또 와도 다 오지 못하니 다 왔는가 하고 보면 또다시 오네’라며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그 시작은 어디인지를 묻고 있다. 왔으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법인데 돌아가고 또 돌아가 끝까지 돌아가도 끝나지 않는 가고 가도 끝나지 않는 그 끝에 대해 사람과 우주의 이치를 자신에게 묻고 있다. 옴과 돌아감은 곧 시작과 끝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한다. 오고 가는 것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우주의 변화일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사상이 서경덕이 주장한 ‘생명사상’이다. 그는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서경덕의 제자 중에는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 허엽, 양사언, 황진희, 한백겸 등이 있고 이항복, 정경세는 우정을 나누었으며 이황과 조식은 교류가 있었지만, 주류인 그들에게 학문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다. 인종이 임금에 오르자, 이언적이 서경덕을 관직에 천거하려고 했지만 극구 사양했다. 서경덕은 인종의 수명이 짧을 것임을 예언했는데 그의 예언대로 왕 위에 오른 지 일 년 만에 죽고 명종이 즉위한다. 이언적이 다시 서경덕을 관직에 천거했지만, 또 거절하고 학문에 열중하여 ‘화담집’, ‘원이기’, ‘이기설’, ‘태허설’, ‘귀신사생론’ 등을 쓰며 은거했다.

 

서경덕은 끊임없는 사색을 하며 물질의 힘이 영원하고 믿었다. 물질의 분리는 단순하게 형체의 분리이지 힘의 분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에서 정의한 에너지보전의 법칙과 다르지 않은 사유이다. 서경덕은 죽음도 생물에게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던 에너지가 우주의 에너지로 환원되는 것이라는 생사일여를 주장함으로써 기 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서경덕은 주기론에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천재라고 불린 율곡 이이의 등장으로 조선 주기론은 주류인 율곡 이이 철학 중심으로 흐르게 된다. 1546년(명종 1년) 개성에서 태어나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화담 서경덕은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 ‘지금, 이 순간 심정이 어떠십니까?’라고 제자가 물었다. 

 

“살고 죽는 이치는 깨달은 지 오래니 편안할 뿐이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4.06.13 09:31 수정 2024.06.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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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