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기억

김태식

하얀 기억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하루 전의 기억은 사라지고

늘 낯선 사람으로 만난다

치매 노인들의 눈빛은

금세 떠나버린 열차를 간이역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흐린 눈동자가 되기도 한다

 

봄날의 꽃잎은 떨어지는 슬픔을

지닌 채 피기가 바쁘게 지고 있다

봄바람에 실려 날리는 꽃가루가

코끝을 스칠 때 쯤 꽃잎이 날리는

그 아픔만큼이나 심한 알레르기 비염을 앓는다

 

꽃잎이 진 자리를 보았다

아직까지 피어난 자리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꽃봉오리의 하소연은 어느 누가 들어 줄 것인가

 

우리 인간이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는 것은

머잖은 나이에 어차피 잊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까운 일부터 하얗게 지워지는 망각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애달픈 찬 서리 산기슭에 스며들어

보호시설이 노을 속에 잠길 때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라’는

애원을 딸 아들이 눈물 속에 묻어 버리자

‘그래 알겠다. 내 죽으면 이곳에서 나가겠지’

파문으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만 허공 속으로 날아 간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6.18 10:36 수정 2024.06.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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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