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바보 여행하는 현자 (104)
낡은 그물을 깁고 있는 늙은 어부 뒤로
넘어가는 붉은 노을을 말없이 바라보며
방금 건져 올린 오징어에 소주 한잔 마셨지
그해 풍년든 오징어가 굴러다니는 항구에서
마시다 만 소주를 내려놓고 바다만 바라보다가
나는 하도 미안해 빈 주머니에서 꺼낸 고독을
술에 섞어 밤새도록 어부와 함께 나눠 마셨다네
취하지 않는 고독을 마시다가 졸다가 하면서
떠나온 자작나무 숲의 살뜰한 강아지를 생각하다가
삼십 년 전 떠난 무던했던 아내를 생각하다가
아무도 없는 빈 바다에서 목 놓아 울고 말았다네
“저 파도가 바다를 뛰쳐나간다고 어딜 가겠나요?”
무심하게 툭 던진 늙은 어부의 한마디가
고독보다 더 짙게 달라붙어 뗄 수가 없었지
쓸모없는 노구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는데
시간이란 놈은 저 혼자 멀리 달아나기 바쁘더군
깨지 않은 술기운을 등대에 기대 먼바다를 보면서
죽음이 먼저 올지 내일이 먼저 올지 생각했다네
살아보니 삶이란 방황하다가 바보처럼 늙어가고
여행하다가 현자처럼 떠돌이별로 돌아가는 거더군
아무렴 어떤가 우린 시간 위에 앉은 고독한 나그네인걸
이 세상 나올 때 입은 육신이라는 옷 한 벌
꿰진 곳 없이 잘 입다가 돌아갈 때 고이 벗어놓고
새벽이 찾아오면 등불을 거두고 돌아가야지
바람의 손을 잡고 땅에서 땅으로 돌아다니고
구름의 손을 잡고 하늘에서 하늘로 돌아다니다가
나를 버리고 너를 버리고 다 버리고 버릴 때까지
생명 이전으로 돌아가는 지혜 얻기를 원하고 원한다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