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부끄러운 일이 더 많다.
어떤 이는 부끄러운 짓을 범해 놓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오히려 잘난체한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더라도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부끄러운 것이 정상이다. 자기 잘난 멋에 사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나 꼭 존재한다.
“만족할 줄 알아 항상 만족하면 평생 동안 욕되지 아니하고, 그칠 줄 알아 항상 그치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보면 좋겠다.
2006년 4월 마광수가 성적 판타지 375편의 시와 영상시 ‘권태를 위한 메모’를 수록한 시집 “야하디 얄라숑”(해냄)을 펴냈다. 이 시집에 자신의 시가 아닌 제자의 시 ‘말[言]에 대하여’와 지인의 시 ‘바이올린’을 도용하여 수록함으로써 사달이 났다.
이때 대부분 언론에서는 ‘표절’이라는 용어보다는 ‘도용’ 혹은 ‘도작’이라는 용어를 더 비중 있게 내세웠다. ‘경향신문’(2007.1.5.)의 경우 사설에서 ‘충격적인 마광수 교수의 시(詩) 도작 파문’, ‘세계일보’(2007.1.6.)의 경우 ‘연대, 제자 시 도용 마광수 교수 징계위 회부 가능성’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도용’과 ‘도작’은 ‘표절’의 하위에 속하는 하나의 행위임에도 이러한 용어를 내세운 이유는, 그가 시를 도용하여 몇 자만 바꾸고 행을 가른 뒤 그대로 수록했기 때문이다. ‘말[言]에 대하여’의 원작과 이 시집 151쪽의 시를 읽어 본다.
입에 장미꽃을 물었다
꽃에 달린 가시가 찔려 몹시 아프다
눈을 감고 그래도 여전히 장미꽃은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못한다
장미꽃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이원(영어교육과 3년), ‘말[言]에 대하여’ 전문
입에 장미꽃을 물었다
꽃줄기에 달린 가시가 찔러
몹시 아프다
눈을 감고
그래도 여전히
장미꽃은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못한다
장미꽃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광수, ‘말[言]에 대하여’ 전문
필자는 이 시집을 전국에 수배하여 어렵게 한 권을 손에 넣었다. 무단 ‘도용’했다는 또 다른 시 ‘바이올린’를 읽기 위해서다. 376쪽에 실린 ‘바이올린’은 미성년자는 감상 불가한 시이다. 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바이올린’이라는 시 제목은 언급하였지만, 정작 시 내용에 대해서는 그 어떤 매체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낯 뜨거운 묘사 때문이라는 짐작이 간다. 그 시의 전문은 생략한다.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도작 행위에 대한 비판의 말도 함께 실었다. “문학평론가 박철화 중앙대 교수는 시 작품의 경우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일부 인용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출처를 반드시 밝힌다며 창작자로서 욕심이 나는 구절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기 창작물처럼 게재하는 것은 타인의 것을 훔친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라며 함께 보도했다.
이처럼 ‘표절’을 말할 때, 그 하위의 행위인 ‘도용’ 혹은 ‘도작’이라며 무서운 표현을 가하는 이유는 ‘표절’이라는 용어가 지닌 ‘도둑’ 혹은 ‘도둑질’이라는 의미를 부각한 것이다. 인용 출처를 밝히지 않은 ‘차용’은 ‘도용’이고, 남의 시를 몰래 가져와 마치 자신의 시인 양 발표한 행위는 ‘창작’이 아닌 ‘도작’이 맞다. 이러한 행위는 인류 보편적 양심에 비춰 보면 ‘도둑질’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만족할 줄 알아 항상 만족하면 평생 동안 욕되지 아니하고, 그칠 줄 알아 항상 그치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말을 마광수가 살아생전 가슴 깊이 새겨 보았다면, 이런 황당한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