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예술의 세계명작들은 저 하늘의 별들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명작들도 보고 읽는 사람들에 따라 그 내용들이 달리 해석되는 것이리라. 대우주 가운데 먼짓가루 하나보다 작은 이 지구라는 별의 억만 분의 한 쪼가리도 못 되는 서울 북한산을 오르다 보면 동물 모습을 한 바위들을 만난다고 한다. 보는 각도와 느낌에 따라 곰으로 보이기도 하고 돼지나 물고기 또는 새로 보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미술이나 조각품은 제쳐 놓고라도 문학 작품들 가운데서 명작 중의 명작이라는 것들조차 시대와 사람에 따라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읽히는 것이리라. 존 밀톤(1608-1674)의 ‘실낙원(1667)을 그 한 예로 들어보면 밀톤은 그의 시 첫 연에서 저자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이 거창한 논거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神)의 영원한 섭리를 정당화시켜 보리라”
이 ‘실낙원’은 한 세기 반 동안 신의 정의를 입증하는 것으로 읽혔다. 인간의 타락이란 성서적 드라마가 예수의 희생을 통해 인류의 구원으로 끝나고, 아담의 모든 수난도 최선의 결말을 위해 신의 예정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오, 무궁무진한 선이여, 악이 선으로 변하는 이 선악과여!”
18세기 후반부터 윌리엄 블레이크나 퍼시 비쉬 셸리 같은 독자들이 ‘실낙원’의 주인공 영웅은 아담도 예수도 신도 아니고 실제로 악의 화신 사탄으로 보게 되었다. 사탄 말고 ‘실낙원’에 등장하는 모든 다른 인물들은 대담성도 용기도 자존감도 없이 신의 계획과 섭리에 무조건 복종할 뿐인데 유일하게 신에게 맞서 사탄은 지옥에 떨어져서도 웅변적으로 선언한다.
새
가는 화살 또는 짧고 굵은 투창,
지붕 모서리를 에둘러가는 대신,
우리는 하늘의 쥐, 고깃덩이 번개, 수뢰,
깃털로 된 배, 식물의 이,
때로 높은 가지 위에 자리 잡고,
나는 그곳을 엿본다.
어리석고, 불평처럼, 찌부러져서....
‘프랑시즈 퐁주’의 시를 보면 알 것 같다. 아, 그래서 우리말로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한다고 했던가. 어떻든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 코스모스 하늘로 날아가는 새, 코스미안이리.
수세식 변소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오면 책가방을 마루에 집어 던지고 뒷간으로 달려간다. 뒷간에 가득 쌓인 똥을 퍼서 똥지게로 날라 밭에 거름을 주었다. 또 여름방학이 되면 숙제로 내준 곤충채집을 한다고 잠자리채를 들고 들판을 달리다가 똥구덩이에 빠지면 개헤엄을 쳐서 간신히 기어 나온 일들은 아직도 기억 저편에 남아있다.
가난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뛰어놀며 자랐던 그 시절의 추억은 평생도록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 준다. 가난은 추억을 줄망정 불행을 주지는 않는다. 가난은 조금 불편할 뿐 정신의 뿌리를 흔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주고 자연이라는 영원한 친구를 만들어 준다.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된다면 자연을 벗하라. 자연에게 의지해 삶의 여정을 걸어가라. 자연이 주었던 추억이 평생의 자양분이 되듯이 자연은 인간에게 한없는 사랑을 준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문명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문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야 진정한 행복이 보인다. 내 몸이 자연이다. 자연이 곧 나다. 지수화풍으로 돌아갈 내 몸이 자연과 한 몸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멀리서 친구를 찾지 마라. 자연이 친구다. 자연만큼 진실한 친구는 없다. 자연이라는 진실한 친구가 없는 사람은 은행 통장에 돈을 가득 쌓아 놓고도 불안한 마음의 노예가 된다. 인간에게 돈은 시냇물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와 같다. 시냇물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널 때까지의 위로밖에 줄 수 없다. ‘그것 자체’, 그것이 자연이다. 스스로 그러한 질서를 가진 자연에게 돌아가는 것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죽고 태어나고 다시 죽고 또 태어나는 곳이 바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깨끗하고 순결하다. 그러나 공허하다. 공허를 견디지 못한다면 자연에게 기대지 말라. 자연은 고독이라는 품격 높은 사랑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로 와서 이슬로 사라지는 몸이여, 오사카의 화려했던 일도 꿈속의 꿈이런가!”
이 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가 죽으면서 남긴 시라고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이나 같은 말로 악은 결코 악을 제거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악을 행하거든 그에게 선을 행하여 선으로 악을 제거하자는 어느 수도자의 말을 상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일상에서 당면하는 과제가 아닌가. 몇 년 전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당한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의 어머니인 이시도 준코는 자신의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2015년 2월 19일 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페이지에 기고한 글에서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신경학과 교수이며 ‘깨우침(1973)’ 등 여러 권의 저서 저자인 영국 출생의 신경과학자요 자연주의자며 과학사학자였던 올리버 삭스는 한 달 전만 해도 건강한 몸이었었는데 지금은 (이 글을 쓸 당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라며 그가 81세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행운이라고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그가 직면한 과제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이 65세 때 그 또한 시한부 선고를 받고 1976년 4월 어느 날 단 하루 사이에 쓴 그의 짧은 자서전 ‘나 자신의 삶’에서 큰 영감과 용기를 얻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흄보다 15년이나 더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다행스러워하면서 흄의 말을 되새겼다.
“나는 여전히 내 연구심과 열정 그리고 사람들과의 유쾌한 친분을 유지한다.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사람들과 경쾌한 유머를 나누면서 애착심과 애정을 느끼지만, 아무에게도 적개심을 품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흄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나는 내 열정이 지나치지 않도록 내 성질을 통제하는 온화한 성정의 사람이었다.” 이렇게 자신도 흄처럼 말할 수 없노라고 삭스 교수는 말한다. 자신도 사랑과 우정을 나눴고 그 아무도 진짜 원수로 대하지는 않았어도 자신을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정반대로 자신은 극도로 무절제하고 광적인 정열이 치열하기 때문에 지금 죽음을 직면하고 있다 해서 자신의 삶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현재보다 삶을 더 초탈하기 어렵다”는 흄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리고 그는 아래와 같이 그의 글을 끝맺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현재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은 감사한 마음뿐이다. 사랑했고, 사랑받았으며 많은 것을 받아 누렸고 뭔가를 되돌려 주었으며 많이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간 나는 세상과 관계하고 특히 작가들과 독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 왔다. 나는 감성이 있는 존재로서, 그리고 생각하는 동물로서, 이 아름다운 지구라는 별에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로서” 이를 내가 ‘코스미안’ 이라고 말을 좀 바꿔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잠시나마 머물 수 있었다는 이 엄청난 특혜와 모험이라는 축복에 감사할 뿐이다고. 아, 진정코 우리 모두 하나같이 잠시 맺혔다가 스러지는 이슬 같은 존재라면, 진실로 꿈속에서 꿈꾸듯 하는 일장춘몽이 인생이라면, 우리 각자 대로 지상에 피는 모든 꽃들과 하늘에 서는 무지개를 반사해 비춰보리라.
정녕,
있을 이
이슬 맺혀
이슬이던가
삶과 사랑의
이슬이리.
아니,
기쁨과 슬픔의
저슬이리.
이승의 이슬이
저승의 저슬로
숨넘어가는
몇 해 전 11월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 사건이 난데 이어 최근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또다시 끔찍한 연쇄 테러가 일어났다. 어쩌다 이들은 자살 테러범들이 되었을까. 평등하게 지역사회 일원으로 받아주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꼴등 시민으로 차별받으며 아무 희망도 없이 악전고투하다 못해 쌓이고 쌓인 사회문제가 화산이 폭발하듯 터지는 게 아닐까.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일등 중의 일등 시민이라고 할 수 있는 ‘유너바머’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그는 현재 종신형을 살고 있는 천재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 대학가와 항공회사 및 정부 기관에 폭탄물이 우송돼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있었다. 연방수사 당국은 범인을 유너바머라고 부르며 체포에 온갖 수사력을 다 동원했으나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현대기술 문명이 인간성의 황폐화와 자연환경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장문의 편지를 범인(본명은 테드 카진스키Ted Kaczynski)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보냈다.
이를 본 그의 동생이 형의 편지임을 직감하고 FBI에 귀띔하면서 사건은 해결되었다. 그는 IQ 170의 수학 천재로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했고 미시건대에서 단 1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UC 버클리 조교수로 부임했으나 2년 만에 사직하고 몬태나주 숲속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1978년 잠시 문명사회인 시카고로 돌아와 공장 직공 일을 했으나 해고당한 뒤 다시 몬태나로 잠적하고 만다. 이후 그는 기술문명 사회를 비판하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편집과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분열증 환자가 된다. 결국 폭탄을 만들어 문명사회를 위협하다가 체포되었다.
같은 시카고 교외에서 같은 시대를 산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에 의하면 유너바머는 한 살 이전 고열과 피부발진으로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가족 방문은 이틀에 단 한 번 2시간만 허락되었다. 방문 시간이 다 되어 어머니가 간호사에게 아기를 넘길 때마다 아기는 심하게 울어댔다. 이렇게 강제로 떼어졌을 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그의 삶을 지배했을지도 모른다며, 또 청소년 시절 체구가 작은 괴짜로 자주 왕따 당해 그때의 분노와 외로움이 그의 성격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천양곡 전문의는 본다.
우리말에도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듯이, 현대 아동교육 심리학자들의 공론도 한 아이의 성격 형성이 세 살까지 거의 완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타고난 부모의 유전인자 DNA는 숙명적으로 어쩔 수 없더라도, 영아기 환경 또한 그 영향이 절대적이란 말 아닌가. 아, 그래서 라틴어로 ‘Finis Origine Pendet’라고 서양에도 ‘시작이 끝을 미리 말해준다’란 격언이 있었나 보다.
인간 만사 거의 매사에 그렇겠지만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88년 동안 인생살이 해오면서 내가 거듭거듭 확인하고 새삼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직장이고 결혼이고 모든 사회생활에서 늘 겪어온 일이다. 한 가지 일로 미루어 모든 일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추일사가지라 했던가. 처음부터 궁합이 맞는 사람이나 일은 저절로 잘 맞아떨어지지만 안 맞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기를 쓰고 악까지 써 봐도 소용없더란 얘기다.
한때 한국 가톨릭계에서 슬로건으로 사용하던 ‘내 탓이로다’의 라틴어 ‘메아 쿨파Mea culpa’가 있는데 이는 미사를 드릴 때 죄를 고백하는 과정에서 회개하는 사람이 가슴을 치며 ‘주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합니다.’를 줄인 말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미안하다는 I'm sorry 대신 사용하는 유행어로 My bad가 있다. 단순히 I'm sorry 같은 사과가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어요’라는 I don't care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999년에는 그해의 단어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 있는 말로 지금도 여전히 빈도 높게 쓰인다. 사과는 하되 책임을 줄이고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 속에 이 My bad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어떻든 네 탓, 내 탓 할 것도 없이 모든 게 다 자연 탓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영어로는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라고 한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리라. 그러니 모든 게 또한 우연이나 필연이라기보다 자연이라 해야 하리라. 우리 김채임 시인의 ‘딸들에게’를 되새겨 보자.
지금 좋다고 좋아하지 말고
지금 슬프다고 슬퍼하지 말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