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어느 해 가을이었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 그늘이 생긴 틈새로 쪼그리고 앉은 70대쯤의 노인들이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연기의 매운맛에 눈을 찔끔거리면서도 무언가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굽고 계셨다. 다가가 보니 숯불 위에 얹힌 적쇠 위에는 제법 큰 토막으로 잘린 생선이 익고 있었다. 뒤집으며 구워 양념장을 발라 다시 적쇠 위에 얹어 맛있게 마무리하여 소주와 곁들이는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맛있게 보였다.
편안한 얘기를 나누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보통 차림새였지만 깔끔한 모습이었다. 구수한 냄새가 나를 그분들의 곁으로 다가가게 했다.
“어르신들 참으로 맛있게 드시는군요”
“으응 이 민물장어를 김 노인네가 자기 고향에 가서 직접 잡아 온 것이네. 젊은이도 한 점 하게나”
이렇게 귀한 자연산 민물장어를 높은 건물 사이로 생겨난 그늘에 앉아 구워 드시는 모습이 아주 여유로워 보였다. 아주 굵은 장어를 할아버지들이 매운 눈을 참아가며 교대로 구워가면서 소주잔을 기울이시는 모습은 그 어느 정감 어린 시골의 모습을 닮았다. 높은 빌딩은 시골의 정자나무를 대신하고 있었고 그 아래서 생긴 그늘은 시원함을 더해 주는 듯했다.
나는 옆 건물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왔던 참이었다. 그 구수한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기웃거리는 젊은이에게 소주 한 잔을 건네주시는 할아버지들의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냥 보내지 않는 할아버지들의 인심이 고마웠다. 나도 함께 퍼질러 앉아 버리고 말았다. 오후 4시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가을에 시내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장어구이에 소주 한 잔이라니.
소주잔이 몇 잔 오가고.
“젊은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요즈음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네. 외국 해운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빌딩에 세 들어 있는 사무실들도 어려운 모양이더군”
“젊은이 올해 나이는 몇인가?”
“네. 마흔여덟입니다”
“내가 올해 칠십 두 살인데 젊은이 나이 때는 정말 좋았는데. 마누라 먼저 보내고 나니 외롭기 그지없네”
거기에 계신 할아버지들 모두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연세가 드셨으니 그런지 기력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할아버지들이 경제적으로는 어려워 보이지를 않는 듯했다. 옷차림새가 구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잔 한 잔의 술잔마다 새겨들을 만한 말씀들을 많이 해 주셨다. 연세 드신 분들의 사회 경험이 깃들어 있었다.
굽지 않은 장어는 아직 두 마리나 남아 있었는데 내가 어느새 소주 한 병을 다 마셔 버렸다. 세 분이 한 병으로는 모자라는 듯해 보였고 미안하기도 해서 소주 두 병을 사다 드렸더니 그렇게 고마워하실 수가 없었다. 한 잔 더 하라는 할아버지들의 권유를 뿌리쳤다. 청명한 가을날 오후에 마셨던 낮술이라 많은 취기가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주와 소주를 다 드신 후 세 분이 하시는 말씀은 하나같이 자식 걱정 세상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한 시간쯤 지난 시간에 나도 가야겠고 해서 일어서려는데 부의 상징인 외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할아버지들 앞에 멈추어 섰다. 운전석에 앉았던 사람이 내렸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중년 부인이었다. 그녀의 몸에는 얼핏 보기에도 비쌀 것 같은 보석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다소곳한 몸짓을 하며 할아버지에게 다가간 그 여인은
“아버님. 오늘도 친구분들과 즐겁게 지내셨는지요?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너무나 예의 바르고 깎듯 한 표현으로 정중하게 모시는 것이었다. 두 대의 외제 고급 승용차가 더 오고 다른 할아버지 두 분도 가셨다. 장어를 굽던 세 할아버지 모두 시내 한복판에 있는 몇백억 원짜리 건물의 주인이며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엄청난 재력을 가진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였다. 그때 소주잔을 권하시던 인자한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그때 그 할아버지들의 모습에서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단지 최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중년 부인한테서 돈 냄새가 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여인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시아버지가 가진 엄청난 재력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씁쓸했다. 시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시아버지도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며느리의 본심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여인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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