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외할머니의 통행료

김태식

나는 요즈음 초등학교 4학년 외손자의 통학길과 나의 출근길이 같아 아침마다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귀엽고 옆으로 보아도 위아래로 보아도 즐겁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정을 꾸려 딸과 아들을 낳은 이후 처음으로 맞은 새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60여 년 전의 나도 나의 외할머니에게는 아주 귀한 혈육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더욱이 나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나의 부모님의 생활이 어려워 직업전선에 나서야 했기에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외갓집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도 어머니가 아닌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엘 갔으니 나는 어릴 때부터 같은 반 아이들에게 부모가 없는 아이로 비쳤다.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져 나는 어머니에게로 왔다. 엄마에게 안 가겠다고 떼를 썼더니 상황이 바뀌었다. 나의 집은 할머니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 아침마다 길목을 지키기 시작했다. 외할머니가 밭에서 모은 채소를 팔기 위해 시장으로 가셨는데 나의 집 앞을 거쳐 가야 했다. 새벽에 시장으로 가실 때에는 내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지만 채소를 팔고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실 때쯤에는 언제나 나와 마주쳤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나에게 과자를 사 먹으라고 하시며 몇 푼을 꼭 주고 가셨다. 마치 나의 집 앞을 지나가는 통행료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가난한 농산물을 조금씩 가꿔서 살림에 보태 쓰려고 했다. 그러니 손자에게 돈을 주고 나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그 정도를 깨닫지도 못할 초등학교 2학년 가을쯤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아무리 할머니를 기다려도 내가 가로막고 있는 길을 지나가지 않은 날이 있었다. 그날은 멀리 신작로 길로 돌아가셨다. 채소를 팔고 씨앗을 사고 나면 나에게 줄 돈이 없어서 먼 길로 돌아간 것을 알았던 것은 시간이 꽤 흐르고 난 뒤였다.

 

그래도 나는 막무가내였다. 할머니를 만나는 날에는 늘 생떼를 썼다. 어김없는 통행료징수였다. 덧붙여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통행료를 주든지 아니면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외갓집으로 가든지. 

 

할머니는 두 가지 모두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채소를 넉넉하게 팔지 못했으니 돈이 없고 나를 외갓집으로 데려가 키울 형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힘드셨을 외할머니가 그립다. 이 가을에.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10.22 10:17 수정 2024.10.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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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