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회 코스미안상 은상 [수상 소감]
저는 평소에 공상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책을 자주 읽기도 하지만, 유튜브에서 슈카월드님의 다양한 사회 이슈를 분석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저만의 시각을 형성해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얻었고, 그것이 이번 칼럼을 쓰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생각들은 다소 평범할 수 있지만, 이렇게 칼럼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선정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디어 속 악인의 미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현대 미디어 콘텐츠는 그 어느 때보다 자극적이고 복잡한 도덕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악인들이 강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마스크걸, 더 글로리, 살인자의 난감과 같은 작품들은 이런 경향을 대표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분명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악행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그 행동을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적 도덕성이 흔들리는 부작용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악인을 중심에 둔 이야기는 흥미를 끌기 좋은 장르다. 악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탐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악인의 매력을 극대화해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것은 콘텐츠의 성공적인 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악인을 지나치게 멋지게 그리거나, 그들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흐리게 만드는 연출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악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 위험이 있다.
마스크걸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주인공이 자신의 불행과 상처를 해소하기 위해 폭력적 선택을 하는 모습은 자칫 시청자들에게 그 복수가 정당하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며 공감을 끌어내지만, 그 공감이 곧 악행에 대한 동조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또 다른 예로, 더 글로리는 피해자가 극단적인 복수를 실현하는 과정을 그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깊이 이입하고, 복수가 하나의 정의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복수의 과정을 정당화하는 서사 구조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제시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더 나아가 시청자들이 현실에서의 폭력적 해결책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악인이 주도하는 콘텐츠는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장르이지만, 우리는 그 경계에서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미디어는 단순한 오락 이상의 영향력을 지닌다. 콘텐츠가 악행을 미화하거나 도덕적 경계를 모호하게 그릴 때, 시청자는 그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콘텐츠를 접할 때 우리는 단순한 흥미 이상의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최근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작가와 창작자들은 이야기 속에서 악인의 행보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예를 들어,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라는 캐릭터는 원래 작가가 성공한 인물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이문열 작가는 이 작품이 어린이들에게도 읽힐 것을 고려해, 엄석대의 패배와 권선징악적인 결말로 이야기를 수정했다고 한다. 이는 작가가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결말을 각색한 사례다. 단순히 악인의 승리가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결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도덕적 메시지를 고민한 것이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또한 결말의 각색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진도준이 결국 재벌 순양의 회장 자리에 오르고, 전생의 윤현우에게 제를 올리며 복수를 완성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이 결말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었다. 윤현우가 다시 살아나 진도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재벌 일가의 몰락을 통해 복수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각색은 단순한 서사의 변화를 넘어서, 재벌의 악행에 대한 순응 대신, 정의로운 결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창작자들은 콘텐츠가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예술은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지만, 그 자유가 책임을 동반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감이 요구된다. 악인의 서사가 흥미롭고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 이야기가 실제로 시청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권선징악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창작물 속에서 악인이 반드시 패배하고, 선한 인물이 승리하는 전형적인 서사만을 요구하는 것은 현대의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악행을 미화하거나, 그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악인의 행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사회적 배경과 심리를 탐구하는 서사가 필요하다.
결국, 현대의 미디어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에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그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작자들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악인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그들이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시청자들 또한 비판적 사고를 잃지 않고, 콘텐츠 속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미디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던지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사회적 도덕성의 기초를 잃을 수 있다. 악인의 서사를 그릴 때, 창작자와 시청자 모두가 그 무게를 인식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 도덕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경계심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