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운우지락(雲雨之樂)

고석근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 이상희, <비가 오면> 부분  

 

 

한 여성 화가가 말했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 금강에 나체로 들어갔어요. 온몸으로 비를 흠뻑 맞았어요.”

 

물속에서 비를 맞는 여성, 어떤 느낌이었을까?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된 기분이 아니었을까?

 

운우지락이라는 말이 있다. ‘구름과 비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구름이 비가 되어 대지에 내릴 때, 대지는 환희에 몸을 떤다. 비를 맞는 여성,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한강 소설의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가 꿈꾼 나무다. 

 

나무가 된 영혜에게 남성의 사랑이 하늘의 비처럼 내렸다면, 영혜는 다시 사람으로 부활했을 것이다. 하지만, 형부는 하늘의 비가 되지 못했다. 인간으로 부활하지 못한 영혜는 점점 앙상해져 갔다.

 

화가 에곤 실레의 ‘나뭇잎을 떨구며 앙상하게 말라가는 나무’가 되었다. 대학교 때 나를 좋아했던 국문과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비가 내리면 나와 같이 비를 맞으며 걷자고 했다. 함께 비를 맞으며 데이트를 했지만,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도 나무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깔깔거리는 천진한 얼굴과 가면처럼 굳은 얼굴.

 

그녀는 비를 맞으며 가면처럼 굳은 얼굴이 풀어져 갔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비가 되어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랐을까?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10.31 10:40 수정 2024.10.3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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