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도가 낳고 키우고 취업시키고 중매도 서곤 여전히 품고 있는 나는 이 고장을 벗어난 적이 없다. 어쩌다 연수나 행사 또는 여행 때문에 떠난 적은 있을지언정.
바늘에 실을 길게 꿰면 멀리 시집을 간다는 민담을 들었다. 나는 최대한 길~게 실을 꿴 바늘을 어른들께 건네곤 했다.
"아따, 고년 시집 한 번 멀리도 갈래나 벼. 외국이라도 갈텨?"
그렇다. 나는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충청도는 결코 나를 보내지 아니하였다. 순환근무를 했지만 멀다고 생각했던 한지마저도 충청도였으니, 나는 충청도가 선택하고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내겐 있다. 느긋한 성품을 지향했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건만 나는 서울년 같다는 피부색과 말씨를 갖고 태어났다. 가끔 ‘그런 겨, 저런 겨’ 또는 ‘그랴’ 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거의 표준말을 사용한다. 말의 속도 또한 아다지시모가 아닌 그렇다고 아다지오도 아닌 알레그레토에 근접한다.
내가 아끼는 임시완 배우가 <소년 시대>란 드라마로 또 대박을 터뜨렸다. 이 배우는 <해를 품은 달>, <미생>, <원라인>으로 아이돌이란 가수보다는 연기자로 깊은 감명 받았다. 나는 아직 <소년 시대>를 시청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이 드라마가 나오기 전부터 함께 공부하고 있는 충청도 사람끼리 대화하면서 충청도 화법 썰전을 잠시 벌였던 게 생각나서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므로 검증된 바는 없음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충청도는 우리나라인 호랑이의 허리 부근이라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리 충청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동북아의 한국 같은 위치였다.
누군가는 충청도 사람을 음해하려 ‘멍청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안다면 그는 그 입을 때려줘야 할 것이다. 요즘 온갖 사건이 일어나는 내 고장 뉴스를 들을 때면 나는 속상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새 뜨내기와 무슬림, 불법 체류자들이 슬며시 들어와 청정지역인 고향에 흠집이 나고 있다.
충청도는 백제의 혼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신라 및 고구려와 섞여 살아왔다. 곳곳에 백제 유물이 남아 있어 새로운 도굴로 가치 있는 문화재로 등극 되는 문물이 발견되고 있다. 충청도식 돌려막기 화법은 살아남기 위하여 또는 과도기적, 지리적, 문화적, 중간계인 특성으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닐까 혼자 유추해 본다.
장자가 말하는 ‘있어도 없는, 없어도 있는 도’에 가까운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정이 낳은 화법이 아닐까도 꼬집어 본다. 그래서 장자는 여태 해석이 분분하기에 여태 살아남는 고전이 된 것이 아닌가도 싶다. 충청도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도 이러한 퍼내고 또 퍼내도 더 퍼낼 것이 있는 깊은 우물 같은 은유가 혈맥으로 이어져 많은 문인이 배출되고 있지 않을까도 짐작해 본다.
예를 들어본다. 어디를 열심히 가는 중이다. 규정 속도에 맞춰 달리는 자동차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차선을 왔다 갔다 하는 다급한 듯한 차가 보였다고 하자.
"그렇게 급하면 어제 출발하지, 지금에야 왔댜?"
또 다른 상황을 펼쳐본다. 식당에 찾아왔다. 만원이라 얼른 먹고 비워줘야 기다리는 손님들이 지루하지 않을 상황이다. 우린 식사를 주문했고, 나왔고, 다 먹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앉아 꾸물거리고 있다.
"여기서 자구 갈뀨?"
문방구에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끼리 내기로 연필 한 자루를 훔치기로 담력을 시험해 본 아이 중에 아들이 있단다. 문방구 주인은 동생들이 잘못한 행동을 계획하면 말려야 할 키도 큰 형이 오히려 동조했다며 아들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쥐어박는다. 사실 아들은 키가 클 뿐 같은 또래였다. 잘못을 아는 아들은 앞서 걷는 아버지 뒤를 고개를 잔뜩 숙인 채 집까지 따라온다. 거실 의자에 좌정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마디 말을 던진다.
"바른 손으로 글씨 쓰는 사람은 그런 짓 안햐."
"점잖은 사람이 왜 그랴?"
나는 이런 소통 방식에 매우 익숙하다. 대놓고 면박 주기가 아닌 스스로 사유해서 깨닫기를 바라는 은유라고 생각한다. 아는가. 충청도에는 대형카페가 엄청 많다. 그 이유는 사색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검증을 증명할 수는 없는 썰이 있다. 충청도에는 문인이 참 많다. 웬만큼 글을 써서는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운 고장이다.
소년 시대가 띄운 충청도가 느린 속도만 가지고 웃지만 말고 이에 대해 돌아보는 긍정의 시선들을 모아, 모아서 초롱초롱하게 충청도를 제대로 조망해 주기를 바란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코스미안상 수상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당선
환경문학대상
직지 콘텐츠 수상 등
시산맥 웹진 운영위원
한국수필가협회원
예술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sylvie7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