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수에 젖은 남자는 눈물을 훔치며 얘기를 이어갔다. 동생은 누나의 식당에서 가까운 빵집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가게 문을 열고 밀가루 반죽을 도와야 하는 빵집의 일은 열 살의 어린이에게는 벅찬 나날이었다. 빵을 배달해야 하고 저녁에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달이 밝아질 즈음의 시간에 몸은 쇳덩이를 붙인 것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세끼 밥이라도 해결되니 다행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내렸던 곳에서 보낸 10여 년의 세월은 누나와 그를 또다시 갈라놓았다. 동생은 군대를 가야 했고 누나는 유명한 일식집에서 일을 했다. 누나는 돈을 벌기는 했지만 쓰는 일은 없었다. 억척스러움을 눈여겨보았던 여자 주인은 누나를 친동생처럼 잘 대해 주었다. 결혼 적령기가 된 누나는 한 남자의 청혼을 받는다.
타고 난 큰 키에 늘씬한 몸매 예쁜 얼굴을 가진 누나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중에 한 남자가 누나의 시선을 잡았다. 누나가 일하는 일식집의 요리사였던 그 사람은 언제나 따뜻함과 성실함으로 다가왔고 외롭고 쓸쓸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누나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이었다. 가정의 소중함이 그리웠던 누나는 서둘러 결혼을 하고 싶었으며 빠른 시간에 가정을 이루고 싶어 그 남자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며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가정을 꾸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사랑의 결실인 딸이 태어났다. 마냥 희망에만 부풀어 있던 누나에게 불행의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딸의 출생신고 때였다. 남편이 혼인신고를 하루 이틀 미루고 딸의 출생신고를 하자는 얘기를 들은 체 만 체 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결혼했던 그 사람이 총각이라 속이고 두 집 살림을 했다는 사실에 누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더욱이 그 남자가 술을 마시고 온 날에 입버릇처럼 말을 내뱉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무식한 여자”
“부모도 없이 자라 막돼먹은 여자”
살점을 후벼 파는 듯한 소리에 누나는 죽기만큼이나 싫은 이별을 준비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의 이별을 시작으로 낯선 객지에서 동생과의 이별 믿었던 한 남자와의 이별에 이르기까지 누나는 어느새 슬픔을 삭이느라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한 잔 두 잔 마시게 된 술로 인하여 그녀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환자가 되어 있었다.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탄식 어린 외로움을 토해 내던 누나는 그동안 알뜰히 모아 두었던 엄청난 금액의 돈을 동생과 자신이 낳은 딸에게 나누어주고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슬픈 여인이 되어 갔다.
그분의 누나가 머무르고 있는 입소시설에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방문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몇 번이고 누나가 불쌍하다는 말을 하는 그 분의 눈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있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